비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고 두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는 '비밀' 때문이다. 글쓰기는 생각과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글을 쓰다가 내밀한 비밀, 숨겨둔 부분이 드러날까 봐, 자기도 모르게 비밀을 발설하게 될까 봐, 그래서 멀리하게 되는 경우다. 글쓰기는 비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으면 쓰겠지만)
2024년 11월 첫째 주 화요일이었다. 그날 NY가 교실에 들어왔다. 글쓰기 첫 수업날이었다. 가벼운 대화로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질문을 했다. 글이 왜 쓰고 싶은지. 그때부터 그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 십여 년간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무 전쟁같이 지나온 전생 같은 시절과 태풍처럼 휩쓸고 간 어린시절의 이야기,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이런 얘기까지 다 해도 되는 건가요?"
"다 해도 됩니다. 근데 제가 전문상담사는 아니라서 나중에 후회하실 거 같은 얘기는 안 하시는 것이."
우리는 웃었고, 글쓰기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다.
지옥 같아서 상처가 되고 여전히 아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걸 다 들어줄/말할 필요는 없다. 다 들어주지/말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지옥을 보여주거나 듣게 되면, 거의 백 퍼센트 그 관계는 끝이 난다. 지옥을 들어주는 일은 전문 상담사가 할 일.) 분위기나 감정에 취해서 술술술 얘기하게 되면, 하고 나서 숙취로 고통을 받게 된다. 지독한 부끄러움이나 자책 등.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쓰고 싶은 것만 쓰세요. 다 쓸 필요 없어요. 안 쓰고 싶은 건 안 쓰는 거예요."
나는 한 시간 정도 들은 그의 삶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그리고 그의 휴대폰을 열게 하고, 인공지능 앱을 깔고, 인공지능에게 요약한 삶을 들려주고 블로그 이름과 카테고리를 만들게 했다. 여러 개의 이름과 카테고리에서 그는 선택했고 그렇게 블로그가 만들어졌다.
그러고는 짧게 블로그 글을 하나 썼다. 그는 음성으로 1차 원고를 쓴다. 휴대폰 문자판에서 마이크를 켜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음성은 문자로 변환되고, 그것을 수정한다. 그의 두 손은 오랜 시간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 굳은살이 입혀져 있다. 손에 착 달라붙는 고무장갑을 낀 것처럼 두껍게 덮인 그의 열손가락을 보며,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올라왔다. 두 손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보석으로 장갑을 낀 셈이다. 실질적인 시간도 부족한데 그는 글을 쓴다, 천천히 꾸준히.
"쓰고 싶은 것만 쓰세요"와 "쓰고 싶지 않은 건 쓰지 마세요" 중에서 후자가 더 효과적이다. 쓰고 싶지 않은 그것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두려움은 안정감으로 변한다. 무엇보다 의식적인 글이 된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