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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 Jan 13. 2019

깊이와 성숙의 시공간

이야기와 타로 활용 자서전 쓰기 16.  9번 은둔자


아주 단순한 정신, 이것이 내부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 마리 뽈 보드



호라 박사 집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모모는 다시 용기를 냈다. 모모는 거북에게 말했다. "부탁이야, 좀 더 빨리 걸으면 안 될까?" 거북은 대답했다. "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거야." -미하엘 엔데 <모모> 비룡소-



[글쓰기 미션] 다음을 읽고 떠오르는 말을 자유롭게 써봅시다.

시간
피정
묵상
현자
한계성
의도적인 고독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오늘'이라는 선물



이제 우리는 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 아홉 번째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9번 은둔자(Ⅸ The Hermit)입니다. 은둔자는 세상사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기만의 시공간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역동적으로 달리며 불같은 열정으로 살아오던 삶에서 물러나 고요히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공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지혜로운 이와 연결하는 시간입니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그동안 소원했던 나 자신과의 진정한 소통의 시간입니다. 부단히 움직였으니 또한 고요히 쉬어야 할 때도 있어야겠지요.


쉼, 이것은 어쩌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고독이 아닐지라도 내가 모르는 '더 큰 나', '진실된 나'라는 존재의 차원에서 볼 때 이 시간은 스스로 선택한 시간일 것입니다. 시간은 약입니다. 참다운 나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홀로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온전히 고독을 성취해야 할 시기이며, 자발적 고독은 자발적 헌신과 마찬가지로 아주 유익합니다. 시간은 공정합니다. 인내하고 견디며 온전히 수용하면 시간은 그에 합당한 선물을 줍니다.


예로부터 수도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최상의 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스스로 들어갔지요. 겉으로 보면 스스로 들어간 것 같지만 실은 내적으로 강력한 요청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면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가 은둔의 시공간을 보내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필멸의 인간이, 한쪽으로 치우쳐 달려온 인간이, 삶을 온전하게 균형 잡을 수 있게 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막이나 광야는 인간관계나 사회생활로부터의 고립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자(賢者)의 시공간에 대한 상징입니다.



고독은 에너지가 없거나 활동이 중단된 상태가 아니다. 영혼에게서 야성을 선물 받는 상태이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은둔자 카드는 9번입니다. 9(3×3)는 최대치, 완성과 균형, 한계와 초월을 표현합니다. '신성한 3'을 3배 함으로써 신성함을 더 강조했지요.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은 생명의 나무 이그드라실에 9일 동안 매달려 비로소 깊은 지혜를 깨닫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9시에 하느님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99세 되던 해에 야훼를 만나고요. 도교에서는 ‘면벽 구 년 끝에 존재도 비존재도 없고, 우주는 완전히 텅 비었다’는 깨달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전설을 보면 여우는 사람으로 변신하기 전 꼬리 아홉 개를 가집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뮤즈는 아홉 명이며, 이슬람교에서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이름은 99가지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어의 ‘아멘’을 그리스어로 변환한 숫자 값은 99가 됩니다.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는 9일 동안 열렸고, 고대 중국에서는 9월 9일 9시에 축제를 합니다. 그 시간에 하늘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가장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랍니다. 선물처럼요. 한문으로 9는 '선물'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진정한 선물은 '시간'이 아닐까요. 시간 중에서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현재성, 오늘이라는 시공간이 아닐까요. 그래서일까요, 영어로 'present'는 '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공유합니다.



영화 <루시> 중. '존재를 규정하는 건 시간이에요. 시간이야말로 유일한 계측 단위죠. 물질이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린 존재하지 않아요.'



시간은 선물처럼 주어지기도 하지만 또한 잔인하게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거대한 낫으로 곡식을 베어내듯 가차 없습니다. 온갖 노력으로 시간에 저항해도 주름살은 생기고 머리는 하얗게 샙니다.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우리는 중력을 거부할 수 없듯이 시간의 속절없음에서 비껴있을 수 없습니다. 시간은 잔인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Cronos)는 시간의 신이면서 풍요의 신이기도 합니다. 그는 반달처럼 생긴 커다란 낫을 들고 있어요. 그 모습은 우리에게 시간의 여러 가지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대지의 신 가이아와의 결합으로 많은 자식을 낳았다. 최초의 종족인 티탄들이었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깊은 땅 속에 넣어버렸다. 가이아는 억압적인 우라노스의 행위에 화가 났다. 자기 안에 무거운 짐이 쌓여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회색빛 철을 생기게 했다. 가슴에서 꺼낸 부싯돌로 갈아 만든 날카로운 을 크로노스에게 주었다. 크로노스는 그 낫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자르고 등 뒤로 던져버린다. 성기는 바다에 떨어졌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가이아는 우라노스가 흘리는 피를 받아 '강한 자들'이라는 의미의 에리뉘에스와 거인들과 여러 님프들을 낳았다. 크로노스는 형제들을 심연에서 풀어주었다. 이렇게 여러 신들이 생겨났고, 이제 크로노스의 지배가 시작된다.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합하여 자식을 낳지만, 그는 자식들을 낳는 족족 먹어버린다.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길 거이라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레아는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제우스를 낳고, 제우스는 결국 아버지 크로노스를 넘어서서 왕좌를 차지한다.(4번 황제 카드 참고) 꿀에 취해 있던 크로노스는 왕좌에서 물러나 지복의 섬으로 가고 그곳에서 잠이 든다.



웨이트 타로 카드의 메이저 9번 은둔자에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있습니다. 머리도 하얗고 수염도 하얀 노인은 눈을 감은채 아래를 향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어요. 눈을 감고 있는데 마치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깊은 심연을, 내면의 풍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냉철한 지성의 얼음산 위에 서 있습니다. 거인처럼 우뚝 서 있어요. 왼손에는 황금빛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에는 램프를 들고서. 램프 안에는 육각형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육각별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삼각형이 만나 이루어진 도형으로, 균형 잡힌 아름다움과 강한 힘을 상징하는 별입니다. '다윗의 별'이라고 부르지요.


마더피스 타로 카드의 메이저 9번 은둔자는 크론(Crone)입니다. 크론은 '쪼그랑 할멈'이란 뜻이고요.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멈은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교차로 가운데는 작은 인형이 놓여 있고요. 황톳빛 두 개의 높은 산 위로 밤하늘을 날고 있는 여신이 있습니다. 달의 여신 헤카테입니다. 여신은 할머니를 향해 빛을 던져줍니다. 빛은 둥글게 산을 돌아서 할멈의 등 쪽으로 다가와 커다란 반지 같은 형상을 비춥니다. 자세히 보면 반지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에요. 통합의 상징인 우로보로스입니다. 쪼그랑 할멈은 오래되고 깊은 지혜의 상징입니다. 할멈은 그동안의 고독과 인간과 신과 자연의 모든 신뢰를 통해 얻은 지혜를 자신과 일치시키고 내면화함으로써 인생의 지식을 터득했고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 교차로에서 쪼그랑 할멈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압니다. 진실한 선택을 통해 가게 되는 길입니다.



Major 9 Crone <Motherpeace Tarot> by Karen Vogel



크론 Crone과 크로노스 Cronos 가 '시간'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시간은 중력과 같습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이미지와 중력이 내려와 쌓이는 이미지는 같습니다. 주름도 그렇게 생기지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려오는 시간과 중력. 남녀노소,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 평범한 사람이나 어떠한 범죄자에게도 똑같이 내려옵니다. 신의 은총이 강림하는 것처럼요. 한국 신화에 '오늘이'라는 여신이 있어요. 오늘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다스리는 시간의 신입니다. 오늘이는 어느 날 강림들판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천을 찾아 떠납니다. 그 과정에서 오늘이는 만나는 이들에게 충실합니다. 약속을 지킵니다. 포기하지 않고 매일 한결같이 인내합니다. 눈물로 자신을 씻어냅니다. 결국 오늘이는 존재의 원천에 이르고 시간의 신이 됩니다.


   

옛날 옛날에 강림들판이란 곳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웬 아이가 하나 불쑥 나타났다. 아이는 부모도 없고 제 이름도 몰랐는데, 신기하게도 새들과 짐승들이 아이를 품어주고 먹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 만났다 하여, 오늘이라 불렀다. 오늘이는 강림들에서 온갖 짐승과 더불어 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원천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천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오늘이는 길을 떠난다.  

   

길을 가다가 한결같이 글공부만 하는 장상 도령을 만난다. 장상 도령은 오늘이에게 길을 알려주고, 언제까지 글공부해야 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또 길을 가다가 오늘이는 꽃 한 송이만 피우는 연꽃나무를 만난다. 연꽃나무는 오늘이에게 길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다른 가지에도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오늘이는 또 가다가 바다를 만난다. 바다에는 큰 뱀이 있다. 큰 뱀은 등에 오늘이를 태워 바다를 건네주고, 여의주를 세 개 물고도 승천하지 못하는 까닭을 알아봐 달라고 한다. 다시 또 길을 가던 오늘이는 매일 아씨를 만나고 장상 도령과 같은 부탁을 받는다. 오늘이는 우물가에서 울고 있는 선녀를 또 만나는데, 선녀는 바가지가 새서 물을 담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이가 풀과 햇빛과 따스한 손의 온기를 모아 정성껏 구멍을 메우고 기도를 한다. 그러자 바가지는 온전해지고 선녀는 원천강까지 오늘이와 함께 간다.     


드디어 원천강에 도착. 하지만 닫힌 문은 굳건했다. 오늘이가 눈물로 강을 이룰 정도로 슬피 울자 문지기가 문을 열어준다. 오늘이는 부모님을 만나 어리광도 부리고. 사계절의 문을 열어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오늘이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에 만났던 그들. 그들의 사연과 부탁을 잊지 않았다. 부모님으로부터 해결책을 들은 오늘이는 원천강을 떠나 되돌아간다. 큰 뱀에게는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 있어서라고 말해주고, 연꽃나무에게는 한 송이 꽃을 꺾어 처음 본 사람에게 주라고 하고, 매일 아씨와 장상 도령에게는 서로 결혼하라고 말해준다. 이리하여 큰 뱀은 용이 되어 승천하고, 연꽃나무는 가지마다 꽃을 피우고, 매일과 장상은 결혼하여 다른 사람을 돕는 신이 된다. 원천강을 잘 다녀온 오늘이는 계절의 순환을 다스리는 시간의 신이 된다. (신동흔 <살아있는 한국 신화> 한겨레출판 참고)

             

 

[글쓰기 미션]

1.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때는 언제입니까?

2. 그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내면의 보물을 찾는 작업이라고 할 때 어떤 분야를 탐험하고 싶나요?

3.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면 오늘이라는 선물 상자가 있어요. 상자를 열면 무엇이 나올까요?  

4.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였나요?




두 번째 밤에 나는 나의 영혼을 소리쳐 불렀다. "나의 영혼이여, 나 지금 지쳤어. 방랑이 너무 길었어. 나의 밖에서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 말이다. …… 자신의 무능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면 우리가 가장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고, 현명한 한계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세영 옮김 <칼 융 RED BOOK> 부글북스 p25, p51)


할아버지의 비밀장소는 산꼭대기 가는 길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할머니 자신이 보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비밀장소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한번도 그 문제에 대해 조사해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비밀장소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 우연이긴 하지만 나한테도 비밀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그럴 수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아름드리미디어 p101)


타로 9번 카드들에 관한 수업 뒤 자유롭게 직관적으로 그린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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