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다의 이야기 2
가죽벨트에 묶인 수가 비명을 지르고, 눈물로 애원을 해도 스피커는 반응이 없었다.
끈적한 침과 콧물, 줄줄 흐르는 눈물,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배설물에 뒤범벅 되어 뒹굴고 있던 게르다는 갑자기 문득 '아무도 없다'는 차갑고 날카로운 자각이 머리에 스쳤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떠오른 그 언어는 별빛처럼 작고 분명한 밝음이었지만, 게르다가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회피하고 있던 깨달음이었다.
게르다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모든 일탈들이 폴의 죽음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절대 만날 수 없는 그 부재로부터 회피하고자 한 행동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죽어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 역시 보증할 수 없다는 것. 게르다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안이 불에 탄 듯 뜨겁고 따가웠다. 탁자 위 모서리에 걸쳐져 있는 물통을 보면서 게르다는 눈을 깜빡였고 어느새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의식이 꺼져갔다.
"자 여기가 어떠세요?"
카페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가 게르다에게 다가와 물었다. 매니저가 인도한 곳은 한 사람 거주할 수 있는 작은 방이었다. 아늑하고 포근한 방이지만 혼자 사용하는 방이었다.
"이곳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어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아요."
게르다를 배려해 주는 말이라는 것을 게르다도 알고 있었다. 게르다는 죽음을 원했고 그래서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았고 곧 사약이 올 것이다.
게르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쾌적한 카페 안이다. 정원의 나무들과 함께 있는 듯 숲의 향기가 난다. 실내에 있지만 마치 테라스에 있는 듯 시원하다. 게르다가 말한다.
"저는 여기서 죽겠습니다. 주세요."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몇 초 뒤 사약을 줄 것이다. 게르다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게르다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뱉는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죽음이 온다는 걸 의식하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명상을 한다.
눈을 떴다.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잡음이 들린 것도 같았다. 하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게르다는 가죽 벨트에 묶인 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몸이 무척 야위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몸을 뒤척여보았다. 끈적이던 오물들이 말라 까칠한 이물질들이 되어 허리와 다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다행히 가죽벨트는 고무가 아니라서, 홀쭉해진 허리와 벨트 사이가 두 팔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잘하면 벨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르다는 몸을 꿈틀거리며 벨트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나무꼬챙이처럼 마른 두 팔을 벨트 안으로 집어넣고 몸을 더 아래로 내려가려 했으나 두 팔이 쓸리며 상처만 날뿐이었다. 다시 두 팔을 위로 번쩍 올리고 몸을 꿈틀거려 보았으나 어깨뼈 때문에 나올 수 없었다. 숨이 찼다. 게르다는 가만히 누워 천천히 숨을 쉬었다. 꿈에서처럼, 꿈을 떠올리며 명상하듯, 죽음을 받아들이듯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몸을 위로 꿈틀거려 빠져나오려 해보았다. 말라붙은 오물들이 퍼석이며 피부를 쓰리게 했지만 게르다는 게으치 않았고, 골반뼈에서 걸렸지만 계속 꿈틀거리며 나오려 했다. 살이 쓸리면서 피가 나고 쓰라렸다. 게르다는 이를 악 물었다.
게르다는 수없이 시도를 해보았으나, 뼈 때문에 불가능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덕분에 탈출이 가능했지만 그 뼈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뼈를 조금 부수면 가능할 것 같았다. 게르다는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놀랐지만 동시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게르다는 똑바로 누워 심호흡을 했다. 지독한 오물 냄새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코가 마비되었지만 그래도 역한 냄새가 콧속을 후벼 팠다. 게르다는 아무렇지 않았다. 뼈만 남은 자신의 몸이 어떻게 가죽 벨트에서 빠져나가는지에 대해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게 내가 정말 원하는 죽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