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등산 배낭
9. 일곱 살의 수
일곱 살의 수는 그날 밤을 기억한다. 밝고 화려한 조명들이 골목까지 흘러들던 그날 밤, 경쾌한 음악과 유쾌한 음성들이 골목 끝 계단 너머까지 들려오던 밤을.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4분 늦게 태어난 동생 명이 둘둘 말린 이부자리로 기어들어가 한참을 울다가 잠잠해진 밤, 일곱 살의 수는 석 달 뒤 입학할 학교를 상상한다, 식탁 밑에서.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교문을 들어설 때, 동생 잘 보고 있어야 한다는 엄마 말을 떠올리고 동생을 바라본다. 조용히 부풀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생의 배를 보며 수는 다시 학교를 상상한다. 먼지 쌓인 등산 배낭에 기대앉아 친구를 상상한다. 오래된 등산 배낭의 주인은 엄마다. 엄마는 여성 전용 오피스텔에서 밤새 야간 경비 일을 하며 세상의 딸들이 행복하기를 꿈꾼다. 세상의 딸들보다 작은 둥지의 두 딸이 더 행복하기를 기도하며 밤을 순례한다. 엄마의 순례를 수는 모른다. 다만 시끄러운 소란이 잦아들고 화려한 조명이 꺼지면, 창문으로 햇살이 한줄기 들어오고 그러면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리라는 것은 안다. 수는 두꺼비처럼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그날 밤을 지난다.
"트레킹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텐진이 아침 식사를 하는 일행들에게 말한다.
"오늘은 로보체를 향해 갑니다. 가는 길에 쿰부 빙하에서 흘러나온 강을 건널 거고요. 등반하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기념비도 볼 겁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로보체 마을에도 들릅니다. 이 마을은 세르파 족들의 마을로.."
"저는 여기서 따로 가겠어요."
텐진의 말을 끊은 이는 게르다이다.
수는 간밤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자유를 얻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새. 둥지를 짓고 싶어 하지 않는 새. 원래 그런 새.
엄마보다 먼저 들어온 아빠는 물을 열자마자 말한다. 이 꼴이 뭐냐? 아빠는 늘 그랬듯 반짝이는 진갈색 배낭에 빨간색 등산복 차림이다. 멋진 차림의 아빠 입에서는 술냄새가 난다.
"왜요?"
텐진이 물으며 게르다에게 다가간다. 게르다가 무슨 말을 한다. 간간이 들리는 단어를 통해 마을에 들르지 않고 계속 트레킹을 하겠다고 하고, 텐진은 그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아빠 목소리를 들은 동생 명이 이불속으로 온몸을 집어넣는다. 이불을 끌어당기며 안고 웅크린다. 저 쓸모없는 것들. 일곱 살 수는 동생을 가리키면서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조차 모른 체 그저 그냥 자신들은 쓸모없는 존재들이라고 여긴다. 아빠는 식탁 옆에 진갈색 배낭을 내려놓고, 집안에서 살림만 하라니까 무슨 일을 한다고 중얼거리며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들어오는 길에 막걸리를 사 오라고 한다. 해가 뜨고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 엄마는 막걸리와 오징어를 사서 집에 들어온다. 수와 명은 오징어 다리를 받는다. 입에 넣고 사탕처럼 빨다가 껌처럼 지근지근 씹는다. 아빠 말대로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