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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게르다와 수

텡보체에서

by 해리포테이토

8. 게르다와 수


텡보체로 가는 동안 당신은 강을 지나고 작은 숲을 지난다. 강을 지날 때는 강가의 뾰족한 바위 위에, 숲을 지날 때는 키 작은 나무의 가지 위에 앉아 있는 파랑새를 발견한다. 깃털이 파란 새는 홀로 오똑하니 앉아 노래를 부른다. 당신은 산의 정령이 새를 통해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텡보체 사원에 도착하자 바람에 펄럭이는 룽따를 본다. 창공에 다섯 색깔의 깃발이 펄럭인다. 룽따는 바람의 말을 타고 하늘로 달려 올라가듯 펄럭인다. 당신은 두 손 모아 인사하는 것으로 신들의 세계에 들어선다.



그날도 이랬어.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출근길.

차를 탈 수가 없어서 걸어갔지.

밀고 당기는 그런 힘을 감당할 기운이 없었거든.

해뜨기 전에 집을 나와 걷기 시작했어.

내리막길을 지나고 둘레길을 걸었어.

해가 뜨기 시작하자 문득 새소리가 들렸어.

포로롱 날아와 내 앞의 계수나무 가지에 앉았어.

노란 탁구공처럼 작은 새가,

새 한 마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었어.

나는 잠시 보다가 내처 걸었어.

그 새는 회사 앞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왔어.

설마 했는데, 정말로.

날아서 나를 지나 나뭇가지에 내려앉고,

내가 지나치면

다시 날아서 내 앞의 나뭇가지에 가 앉고.

그렇게 반복하며,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지.

내내 무슨 말인가를 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알고 싶었어.

무슨 말을 했을까,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그들은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엄마의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온 걸까.

엄마는 늘 말했지,

죽어 새가 될 거라고, 또

저 인간은 죽어서도 산을 떠돌 거라고.

정작 새처럼 몸을 날린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잠을 못 잔 당신은 뿌연 안갯속에 있는 듯 답답하고 어지럽다. 벌써 일주일 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지러울 정도로 높이 솟은 산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작고 얼마나 부질없는 존재인지 새삼 떠올린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당신은 불면의 밤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셀파가 지고 가던 짐에서 파우치를 꺼낸다. 파우치에는 당신의 불안을 잠재우며 작은 죽음으로 이끌어주는 약이 들어 있을 것이다. 부족한 수면으로 트레킹에 지장을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약을 삼킬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약통을 발견하지 못한다. 대신 출발하는 날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체 가방만 들고 방을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마에 손을 짚으며 밖으로 나오다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포물선을 그으며 쏟아지는 별들로 당신은 현기증을 느낀다. 몸이 휘청인다. 별들이 당신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빛나게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괜찮아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여인이다. 당신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 좀 마셔요. 따뜻한 차를 마시면 몸도 마음도 편해지죠."

여인이 들고 있던 차를 당신에게 권한다. 스테인리스 컵에 와인처럼 붉은 다르질링 차다. 어제 오후에도 마셨던 홍차다. 당신은 홍차를 마셔서 어제도 잠을 잘 못 잤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거절하지 못한다.

"고마워요."

당신은 한 모금 마신다. 쌉싸름하고도 달큰한 향을 느낀다.


"저는 게르다예요. 덴마크에서 왔어요. 당신은?"

"저는 수예요. 서울에서 왔어요."

당신은 싱그러운 웃음을 얼굴 가득 담은 게르다를 보다가 따라서 미소를 지어본다. 당신은 웃음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다. 게르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수, 이 순간이 있으니까요. 당신, 수와 나, 게르다가 지금 여기에 있잖아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여기'라는 말에, 거북한 파문이 인다. 수는 항상 지금 여기를 중요시 여기며 살았다. 어제도 내일도 없었다. 항상 지금 여기, 머무는 곳에서 수는 자신을 바쳤다. 하지만 남은 것은 공허한 껍질 같은 존재, 영혼이 다 소진되고 단백질과 비계덩어리만 남은 존재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르다가 속삭이듯 말한다.

"그 새도 그랬을 거예요."

수는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다가, 이내 알아차린다.

"아.. 할단새.."

"둥지라는 집을 짓기에는 너무 자유로운 새인 거죠. 낮과 밤, 새가 머무는 그 시간과 장소에 분명히 있었던 거예요. 그 시공간에 충실했던 거죠."

"그래도 너무 춥고 외롭지요. 둥지라도 있다면 어두운 밤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수는 스스로의 음성이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말이 계속 나온다.

"둥지를 지어서 자기를 보호해야죠. 그래야 다음날 햇살을 즐길 수 있고요. 밤이 되면 후회할 일을 알면서도 계속 한낮의 즐거움을 누리기만 하다는 게, 자기 생각만 한다는 게, 그렇게 매번 반복한다는 게 너무 어리석잖아요."


수는, 어리석잖아요라고 하는 말에서 음성이 작아진다. 자신이 없다. 어리석은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안다. 며칠 동안 선잠을 자고, 또 푹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다시 며칠 선잠을 자고, 또 수면제를 먹는 반복된 생활을 하는 자신이 투영된다. 둥지는 수에게 편안한 잠 같은 것이다.


게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연다.

"그 새는 원래 그런 새일 거예요."

씨익 웃으며 덧붙인다.

"둥지를 짓지 않는 새. 세상이 집인 거죠. 둥지라는 틀이 나를 가둘 수는 없거든요."

수는 중얼거린다.

"그래도 겨울밤은 너무 춥고 너무 외로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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