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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움직이는 빙하

꿈틀거림

by 해리포테이토

10. 움직이는 빙하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는 수면에 닿자마자 튀어 오르는 물수제비처럼, 멀리서부터 돌조각이 튀어 날아오듯 빠르게 날아온다. 잠시 뒤 뭔가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산이 울음을 우는 듯, 히말라야의 거인이 소리 죽여 우는 듯. 울음소리는 새의 날개처럼 창공을 가득 채우며 수의 곁으로 다가온다.


어디선가 산사태가 났다고, 일행 중 누군가 말한다, 휘파람 소리는 산사태를 알리는 산사람들의 경고라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입을 다문다. 주위가 침묵으로 가득 채워진다. 수는 산이 내는 울음과 경고에 이상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소름이다.


텐진은 게르다를 떠나보내며 다음 장소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 무엇도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르다는 웃으며 손짓하고 돌아선다. 어떤 집도 자유로운 그녀를 가둘 수는 없다, 할단새처럼 그녀는 매 순간 한낮의 풍요를 누릴 것이다. 산악 동호회에서 만나 주말마다 행복을 누리던 수의 엄마 아빠는 산정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죽기 전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엄마는 산도 좋았지만 생각하니 산악회 사람들이 좋았다고, 처음 신입회원으로 들어왔던 아빠가 너무 좋았다고,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는 집에 있어야 했다고, 사랑하는 쌍둥이를 위해. 또 사랑하는 산악회는 아빠가 엄마 대신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고.


게르다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는 위장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꿈틀거림. 뭔가를 마구 토해놓으면 편할 것 같은 느낌 혹은 하이에나나 눈표범처럼 살육과 피비린내를 느끼며 물어뜯고 싶은 충동. 낯설고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수는, 이런 느낌들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이제야 만나는 듯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린다.


텐진이 일행을 향해 말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어요. 이른 아침에 떠났어야 했는데요. 오전이 지나면 빙하가 위험해집니다."

"빙하가 왜 위험한가요?"

수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기이한 음성에 소름이 돋는다. 구멍 뚫린 현무암을 날카로운 칼날이 지나가듯 거칠고 예리한 음성이다. 수는 돌아보지 않는다.

텐진이 대답한다.

"빙하는 살아있어요. 지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요. 움직이면 틈이 생겨요. 그러면서 얼음조각 같은 게 떨어져 내리고 그러다 산사태가 나기도 하고요."


수는 거대한 얼음산이 거인처럼 앉아있다가 태양이 떠오르면 구부정했던 어깨를 펴는 모습을 상상한다. 굳었던 어깨가 펴지면서 얼음조긱이 떨어진다. 유연성을 잃은 관절이 끊어지면서 고통으로 우는 거인, 거대한 얼음산, 쌍둥이를 낳은, 백여 명의 산악회원을 이끌던 엄마. 엄마는 아빠와 함께 했던 마지막 등반을 울면서 노래했다. 그 겨울의 산행을, 돌을 갓 지난 수와 명을 등에 업고 지리산을 넘던 그때가 좋았다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다. 수도 그날을 기억한다. 아빠 등에 업혀서 보았던 눈 덮인 산을. 설산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텐진이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대략 여섯 시간 정도 트레킹합니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강을 이루는 길도 지날 텐데요. 물기 젖은 돌조각들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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