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아프지만 힘차게. 그렇게.

나도 모르겠는 나의 마음

by Yenny

누군가와 이별할 땐

기억에 대한 착오가 일어나

좋았던 기억, 풋풋하게 서로 좋아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그래서 아련히 전 연인과의 향수와 그리움에 젖어 헤어져 나오는데 한참이 걸린다.

연인과의 걸었던 거리, 함께 들었던 음악, 함께 거닐던 장소 등 기억이 베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미화된 기억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껍질로 탈피해 새로운 나 자신으로 다시 진화한다.


그럴 때쯤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너도 다른 남자도 만나보고 하면서 나랑 비교해 봐. 나보다 더 나쁜 남자도 만나봐서 내가 어떤지도 보고.

너무 이혼의 아픔에 얽매여 있지 말고. “

얼마 전 남편과의 만남에서 걸으면서 남편이 나에게 전해 준 말이다.

마치 나에게 전혀 미련이 없이 깔끔히 정리한 느낌이 들었다.

“너도 그럼 새로운 사람 만날 거야?”

하니 남편이

“좋은 사람 생기면. “

이라고 답했다.


남편이 미워도 이상하게 그 말이 쿵 내려앉는다.

정말 나에 대한 마음이 1도 없구나.

밉기만 하던 남편에게 내가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리움이 있었을까.


주위에서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것이라고 벌써부터 소개가 들어온다.

나는 나를 “딸”이라고 불러주시던 한없이 다정하고 인간적이었던 시아버님도 이제는 영영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 한복판이 무너지고,

사실은 한 때 좋아했던 남편의 쌍꺼풀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눈도 누굴 만나든 비교되고 그리울 것 같다.

나에게 못 되게만 대하던, 위로 한 번 해주거나 안아준 적 없는 남편이건만 뭐가 이리 그리울 것 같은지.

새로운 사람을 대비해 보니 남편과 비교될 것 만 같고 잊히지 못할 것 같은지 어리석은 나 자신이 싫다.


이별이 아픈 건지 이혼이 아픈 건지 모르겠다.

아니 둘 다 참 아프지만 이혼으로 인해 이제는 정말 남남이 되어 땅이 제대로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게 더 서려온다.

밉기만 하고 못 난 모습만 보이던 남편이 헤어지려니 왜 이렇게 그리움이 아려오는 걸까.


정이 무섭다.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눈이 이젠 서늘한 눈빛으로, 무관심한 표정으로 대화를 피하려는 태도로 변하는 그의 차가운 모습이 무엇보다 아프다.

사람의 마음은 어찌 돌릴 수가 없다.

나도 인정하지 않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이번의 만남에서 나에게 너무나 상처를 주었지만,

다시 마음을 피워 오르게 불지폈나보다.


내 마음 어딘가가 고장 난 것 같다.

누굴 만나 이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이 사람을 다시 만나도 사랑받고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정신 차리자.


이 기나긴 밤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부들이 어영차 크나큰 그물로 새벽을 들어 올리듯 그런 힘찬 날을 맞이하자.


여명이 커튼 뒤로 천천히 들어 올려진다.

사라져 가는 별에게 내 외로움을 속삭이고

떠나가는 가는 달에게 내 슬픔을 문질러본다.


난 할 수 있다. 이 기나긴 여명을 이겨내면 새로운 날들이 반드시 시작될 것이다.

힘차게, 아무도 모르게 또 씩씩한 척 웃으며 하루를 맞이하는 나의 가면 뒤로 끝없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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