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예상외로 장기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유행 독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지난 후에도 잠잠할 기미가 안 보인다.
우리의 삶이 코로나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바이러스의 위험으로 인해 사람들의 모임이 차단되면 이렇게 어마 어마한 사회적, 경제적 충격이 다가 온 다는 점을 아무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다중의 사람들이 아무 위험 없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 이렇게 중요한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만나기를 기피하는 새로운 현상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만남의 의미가 무엇인지 재음미할 계기가 된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경제적 어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진정한 만남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숙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예전에 고객이 어떤 모임에 나를 추천하여 정기적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기업 CEO나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교류하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모임의 중심 추가 결국에는 파워를 가진 특정인에게로 기울어졌다. 대화의 중심이 특정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진정한 만남이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세계관을 자유롭게 상대방과 교환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인이 대화를 주도하게 되면 수평적 대화보다는 상하관계의 수직적 대화의 모양을 띠게 된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진심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드러난 형식만을 교류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모임 자체가 기피되면서 이런 형식적인 만남을 할 기회 자체가 봉쇄되고 있다. 대면 접촉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수직적인 대화를 강요할 수도 없다.
동창회 모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학창 시절의 순수했던 가슴을 추억하며 반갑게 마주하기도 하지만 특정인이 어떤 목적을 위해 모임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로나는 이런 모임 자체를 여지없이 불가능하게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상사나 다른 동료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직장에 출근하는 것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코로나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에 출근하는 것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절약해서 재택근무를 하며 실질적인 업무 효과를 내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결혼식, 장례식과 같은 각종의 의례 의식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혼식만 보더라도 새 가정을 이루어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를 격려하기 위한 의미보다는 부조금의 품앗이를 위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네트워킹을 위해 참석한다. 진정한 애도가 필요한 장례식에서도 역시 동일하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이처럼 표면에서만 맴돌던 만남의 거품들이 꺼져가고 있다. 체면과 형식이 불필요해졌다. 껍데기는 가고 만남의 본질적인 알맹이만이 남게 되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나도 외부와의 모든 관계가 거의 단절되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는 물론이고 직장 동료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시험 준비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
핸드폰은 아예 없애 버렸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중지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책상으로 돌아오면 한참 동안 마음이 산란해지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였다.
간혹 집으로 오는 전화가 있으면 아내가 중간에서 나와의 연락이 차단되도록 도와주었다. 가족의 연락도 나에게 방해될 것 같으면 아내가 적당하게 이야기하고 끊었다. 그 덕택에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 준비 이외에는 거의 다른 모든 생활이 차단되었다.
그러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기존의 형식적인 관계의 거품들이 빠졌다.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프리미엄이나 남들이 선망하는 새한종합금융 회사의 직원이었다는 프라이드도 거품이었다. IMF는 나의 형식적인 거품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거품이 꺼진 뒤의 내 모습은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형식적인 관계에 목마를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오직 나의 실력만이 새로운 돌파구였다.
그 후 변호사가 되어 열심히 일했다.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법무법인을 운영하면서 세무, 회계의 투명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했다.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강직하게 변호사 업무를 수행했다. 돈만을 위해 고객과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나를 둘러싼 사회 환경, 경제 여건은 조금씩 변해갔다. 변호사 업계가 예전의 특권을 누리던 시대가 지났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변호사 숫자가 늘고 덩달아 경쟁도 치열해졌다. 변호사라는 직함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더 이상은 아니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다시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국가적, 사회적 거품은 물론이고 나 자신의 거품도 예외는 아니다.
거품의 특징은 잔잔히 흐르는 본류와는 다르다. 표면에서 화려한 모양을 뽐내며 자신이 본류인 양 흘러간다. 거품의 존재로 인해 밑바닥에서 조용히 흐르는 본류는 부각되지 않는다. 거품은 또한 지속성이 없다. 잠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곧 소멸될 운명의 존재이다.
나의 삶에서 이런 거품은 무엇인가? 겨울철 황량한 빈 들에 서 있는 나목처럼 거품이 다 벗겨지고 나서도 봄철이 되면 다시 싹 틔울 수 있는 생명력은 내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