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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아름다운 세 사람

2016년 어느 날

by 한상영변호사

첫 번째 분은 카키색 개구리 군복을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 무늬가 있어서 옷에 때가 묻었는지 주름이 생겼는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는 군복을 입고, 그는 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매일 아침 걸어서 출근할 때 지나가는 곳이었다. 저층 주택이 나란히 있는 곳에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고,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는 서초동 교대역 부근이었다.


근처에서 수집한 종이 박스들을 부지런히 요리조리 손을 움직여 가지런히 정리하여, 담장 옆에 세워 놓은 리어카에 차곡차곡 쌓는 일이 그가 하고 있는 일이었다.


머리에 구불구불 원형으로 접어진 타원형 모자를 쓰고, 리어카 주위를 움직이며 박스를 접어 쌓고 있는 그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약간 깡마른 몸에 가무잡잡한 얼굴인 그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자신을 흘낏 쳐다보든 말든 전혀 아랑곳이 없었다.


차곡차곡 종이 박스를 쌓으며 열중하는 그의 얼굴에는 엄숙함이 느껴졌다.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 접근하여 말을 건넨다는 것은 좀 어려워 보일 듯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그곳을 지나기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으니까, 항상 그 장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그를 본 지가 어느덧 10년도 넘었다.



두 번째 분은 야외 주차장을 관리하시는 분이었다.


건물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차량을 가지고 오면 고객들의 주차를 안내하거나, 직접 차 주인으로부터 자동차 키를 건네받아서 적당한 곳으로 차를 주차시키는 것이 그가 주로 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지나치면서 그를 보고, 다시 내가 퇴근할 때 그를 또 보니까, 그는 하루 종일 야외 주차장에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주차장 한편에 세워 놓은 폐차된 작은 갈색 봉고차였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그는 폐차 안에서 몸을 피하곤 했고, 피곤할 때도 폐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야외 주차장이라는 외부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그에게 폐차는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소중한 사무실이었다. 주차관리 장부를 정리할 때도 그 폐차 안에서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야외 주차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차를 안내하고 주차를 대행해 주었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에는 폐차 옆에 큰 파라솔을 세워 놓아서 작렬하는 햇빛을 피하였고,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도 파라솔 밑으로 피하면서 주차관리는 계속했다.


추운 겨울철에는 폐차 안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였지만, 차 안에 가만히 있으면 발이 오므라들고 몸이 움츠려 들어 귀마개와 모자, 장갑을 쓰고 밖으로 나와 발을 껑충껑충 뛰면서 몸에 열을 내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길가 바로 옆쪽에 놓은 간이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하였다. 의자 주변에는 주차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들이 한두 명씩 찾아와 담소를 나누었다. 계속 서 있기만 하면 다리가 피곤하고 지루하기 때문인지 제자리 뜀뛰기를 하며 건강을 챙겼다.


거의 하루도 변함이 없었다. 차량이 방문하지 않는 주말에만 쉬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나이가 거의 60대 후반, 아니면 70대는 되어 보였는데, 버려진 폐차를 사무실 삼아 야외에서 끈질기게 일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 그 자체였다.


세 번째 분은 구두를 닦는 분이었다.


앞의 리어카 주인이나 주차 관리하시는 분보다는 약간은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50대 후반은 되어 보였다. 일하는 그의 표정은 항상 변함이 없어 보였다. 일에 찌들어 보이지도 않았고, 짜증을 내는 모습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얼굴은 항상 밝게 펴 있었고, 눈의 초점은 항상 한쪽 손에 든 구두를 향하고 있었고, 손은 부지런히 구두 앞뒤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다른 동료가 근처 사무실들을 찾아다니며 구두를 모아 오면, 그는 열심히 광을 내었다. 구두에 구두약을 칠한 후 헝겊으로 힘껏 구두를 닦고, 물로 물광을 내고, 끝 무렵에는 구두를 불에 살짝 스쳐 지나가게 하여 구두에 윤기가 더욱 나게 만들었다.


이렇게 그는 일어서면 천정이 닿아서 똑바로 일어설 수도 없는 조그만 컨테이너 박스에서 하루 종일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발꿈치 부분이 닳아진 구두들은 컨테이너 박스 바깥 옆에 설치한 모터 회전 기계를 이용하여 갈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계절이 바뀌는 것은 그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손님이 적어서 가끔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물끄러미 응시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밖으로 나와 박스 주변에 고인 물들을 빗자루로 쓸어내기도 했다.


해가 몇 년 지나면 다른 동료들은 월급이 적어서인지, 일이 고되어서인지 어디론가 떠나가고 새로운 동료가 왔지만, 그는 우직스럽게 컨테이너 박스를 지켰다. 10년 내내 출근하는 길에 그 컨테이너 박스 근처에 다가오면, 그가 오늘도 박스 안에서 구두를 닦고 있을까 하고 물음표를 던지곤 했다. 드디어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박스 근처에 다가와 박스 안을 보면 어김없이 안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 그가 있었다.



10년 넘게 말을 건네 본 적도 없고, 서로 눈인사도 나눈 적도 없는 낯익고 익숙한 세 명을 지나가면, 집에서부터 걸어서 출발한 지 30분 정도가 흐른다. 드디어 내 사무실이 있는 교대역 근처 건물에 도착한다.


운동 삼아 6층 계단을 걸어서 올라 사무실에 도착해서, 일단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는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오늘 통화해야 할 고객들에게 전화하여 사건 내용을 알려주거나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무실에 방문할 손님이 없으면, 이제 법원에 제출할 서면을 작성할 준비를 한다. 반대쪽 상대방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법 해석과 법 적용에서 문제가 없는지, 논리에는 허점은 없는지 관련 서적을 찾아 연구하고, 판례를 검색하며 분석하다가, 드디어 어느 정도 윤곽이 파악되면, 컴퓨터에 앉아 문서로 서면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도중에 전화가 오거나 손님이 와서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계속해서 내 주장을 일사천리로 일관성 있게 작성할 수 있지만, 전화나 손님 때문에 그 흐름이 끊기면 처음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건 내용을 연구하고 서면 작성하는 일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다.


재판이 있는 날에는 며칠 전부터 재판에서 변론할 내용에 대한 준비를 한다. 재판정에서 내가 준비한 서면들을 판사에게 설명하고, 상대방의 변론을 들은 후 상대방 주장의 문제점을 공격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공격하면 적극적으로 내 주장을 방어한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다음날 이들 세 사람을 지나쳐서 사무실에 도착한다.



이렇게 사무실에 출근한 지가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내 딸들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기도 했다. 몇 해 전에 과로 때문에 힘들게 사무실을 출근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항상 다니던 출근길로 세 사람을 지나치면서 한 결 같이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변하는 흐름 속에서도 그들은 변함없이 묵묵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힘든 몸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숙연함과 아름다움을 더욱더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카키색 개구리 군복 입은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깡마른 체구라서 건강이 그리 완벽하게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긴 했지만, 막상 그와 리어카가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나 않았을까? 어디 몸이 아픈 것일까?”


출근하는 길에 마음속으로 그와 리어카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그가 일하던 곳을 눈여겨보곤 했다. 어느 날 다시 같은 장소에서 그가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심 매우 반가웠다. 하지만 얼핏 보니 안타깝게도 몸이 예전보다 좀 야위어진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힘든 모습 그대로 박스 정리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더니 이제 그를 못 본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 후 더 이상 그의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비록 그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열심히 일하는 자의 아름다움은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고 깊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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