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이사를 했다. 이사 온 집 바로 앞에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깊은 산속에서 시작된 시원한 공기가 집에까지 내려온다. 주변에 버스가 다닐만한 대로가 없어 시끄러운 차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다.
4월이 되자 숲 속에 딱따구리가 와서 그만의 특이한 소리를 냈다. 아침마다 비슷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 앞의 숲으로 찾아왔다. 딱딱거리는 소리가 너무 신기해 핸드폰에 녹음을 하여 가끔 들어 보곤 했다. 잠깐 더 걸어가면 물이 흐르는 자그만 계곡을 만난다. 도시에 이게 얼마나 큰 혜택이냐 하는 심정으로 계곡을 바라본다. 딱따구리는 봄철에 매일 찾아오더니 봄이 끝나갈 무렵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 해발 300미터 정도 되는 봉우리다. 산이 온통 바위다. 오르는 길이 거의 계단처럼 되어 있다. 봉우리에 다 오르면 숨이 차고 온 몸이 땀에 젖는다.
300미터 봉우리에 오르면 서울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북쪽으로 북한산, 도봉산은 물론이고 서쪽으로 거의 서해안 바다까지 보이는 듯하다. 주위가 온통 암벽으로 뒤 덥혀 있어서 마치 자그만 설악산 안에 올라온 듯하다.
이렇게 서울에 멋진 산악이 있다는 걸 예전에 미처 몰랐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며 자연을 잊고 지냈다. 사건 속에 파묻혀 사람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만 몰두했다. 고객과 상담하고, 법률 검토 후에 소장이나 서면을 작성하고, 법정에 가서 변론하다 보니 자연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법무법인을 운영하면서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나를 꽉 졸라맨 듯한 무언가가 사르르 풀어진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숲 속 자연이 내 마음에서 감탄사를 품어내게 한다. 머리가 개운하다. 복잡한 도심 안에서 살 때는 느낄 수 없는 잔잔함이 있다.
가슴속 어딘가에 멀리 묵혀 두었던 나만의 노래가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내 영혼의 노래이다. 저녁에 잠자기 전에 잠깐 창밖의 숲 속을 바라본다. 숨을 깊게 들어 마신다. 내 몸속 깊이 생명의 공기가 깊게 들어가는 듯하다. 이 모든 것이 묵묵히 있는 서 있는 자연의 힘이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등산을 하고 계셨다.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50대 후반인 나는 정말 젊은 축에 속했다. 자주 산에 오르다 보니 몇 번 마주치던 사람들도 생겼다. 인사를 하고 연세를 여쭈어 보았다. 70대는 너무 흔했고 80대도 많았다. 여성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직접 보지는 못하고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90세 이상인 여성 어떤 분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산을 오른다고 했다. 내가 직접 만난 사람 중에 중에 가장 나이 드신 분은 89세의 어느 남성이었다.
이 분은 등산한 지가 벌써 40년째라고 했다. 그분이 산 초입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려면 집에서부터 2시간 정도 걸어와야 한다. 매일 산 정상까지 가기에는 힘이 부쳐서 단계적으로 등산한다. 산 정상까지를 4 등분해서 한 단계씩 높이 올라가 1주일에 한 번씩은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주말에는 사람들로 붐벼서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대단한 분이다. 장딴지 근육을 보니 젊은 사람처럼 굵은 힘줄이 보인다. 이 분 뿐만이 아니다. 70대를 넘는 분들 대부분의 다리를 보니 다들 그랬다. 할머니처럼 보이는 분들도 쉬지 않고 거뜬히 올라간다. 산 정상 근처까지 가는 분들도 많다. 전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0년, 20년 늘 이렇게 등산해 왔다고 한다.
산에 올라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잘 단련하고 있었다. 의술의 발달로 노후 기간이 길어진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치 않으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부터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80~100세가 되어 누가 삶의 만족을 느낄 것인가? 몸과 마음, 영혼을 잘 관리하여 그분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지속성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