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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Dec 29. 2020

Realist 남편 vs Visionary 아내

“ 시험공부 3년 했으면 많이 고생했다.” “ 이제 시험공부 그만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 


한참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님이 우리 가정 형편을 걱정하며 한마디 하신 것이었다. 누나도 어머님과 비슷한 취지로 말을 했다.


“아니에요! 애 아빠는 반드시 합격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애 아빠에겐 절대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마세요.” 아내는 어머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행여나 시댁 식구들이 나의 사법시험 준비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아내가 중간에서 단속을 철저히 했다. 


어머님이나 누나가 시험 준비를 중도에 그만두라는 말을 했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시험에 합격한 후에서야 아내에게 들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시험을 준비하는 시작 단계부터 이미 합격이 이루어졌다는 비전을 마음속에 품었다. 시험 준비 3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합격의 비전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내의 모든 생각과 말은 이 당시 이미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다. 아내에겐 보이지 않는 미래가 현재의 삶의 모습이었다. 


어머님과 누나가 나의 시험 준비를 중단하라는 말을 했을 때 아내가 그렇게 단호하게 거부한 것은 미리 합격의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아내 입장에선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준비하는 당사자인 나는 realist였다.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첫 단계부터 과연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뚜렷한 확신과 비전을 갖지 못했다.


합격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긴 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미래의 합격이 내 생각 속에 미리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실제로 열심히 공부를 하면 그것이 쌓여서 장래에 합격이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를 가졌다. 


시험 준비하는 동안 내내 아내는 나에게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말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품은 비전 그대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 어느 날 아내와 산책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미래의 꿈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거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잘 안 돼.” 아내에게 물었다.


“ 내 머릿속으론 이미 미래가 다 그려져” “ 미래의 꿈이 먼저야” “현재는 그 꿈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거야.” 아내가 대답했다.   


“ 현재는 눈에 보이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인데, 당신 말대로라면 허황된 공상 아니야?” 아내에게 물었다.


“ 건축가를 생각해 봐. 건축가는 집을 짓기 전에 집에 대한 청사진을 이미 다 그려 놓잖아. 그것이 공상이야?” 아내가 대답했다.


현재에 충실한 realist 남편과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으로 살아가는 visionary 아내 사이에는 미세한 간격이 있었다.


어쩌면 미래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서로의 차이가 의견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나는 시골에서 살기는 했지만 부모님 덕분에 먹고사는데 큰 어려움을 몰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좋은 성과를 바탕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수월하게 취직한 후 열심히 일해서 제 때에 승진하는 패턴으로 삶을 살아온 내가 현실주의 태도를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어린 시절에 장인이 사업에 실패한 이후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가족끼리 다툼도 많았다. 희망이 전혀 없었다.


아내가 믿고 의지할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었다. 허름한 집 옥상에 올라 노을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암담한 현실을 잊었다. 아내의 가슴속엔 눈에 보이는 현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으로 가득 찼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재를 버텼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에 끌어당겨 살아온 아내와 평탄한 현재에 만족하며 미래를 등한시하며 살아온 내가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결혼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 생활 중에 서로 다툼이 있어도 미래에 더 나은 부부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갔다. 


현재의 다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현재 치열하게 다투지만 개선이 되면 더 좋은 부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우리 부부 사이가 이만큼 친밀한 것도 이와 같은 아내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흐르며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을 많이 만났다.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꿈꿀 수 없는 삶의 영역에 부딪칠 때는 과연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만은 없다. 그래도 의지할 것은 현재 보다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는 그루터기에 자그만 새순이 돋아나듯이, 긴 어둠이 끝난 후 동녘에 아침 햇살이 비치듯이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생명을 잉태한다. 


세 찬 겨울바람을 이겨 내고 다시 싹을 틔우는 나무의 생명력, 땅속에 묻힌 조그만 씨앗이 땅을 뚫고 새싹으로 태어나는 자연의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도 역시 동일한 원리로 이루어질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귀로도 들리지 않게 삶의 희망의 새싹이 우리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란다. 30여 년의 결혼생활을 지내며 리얼리스트인 내가 비저너리인 아내를 많이 닮아간 것 같다. 힘들 때 아내에게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 미래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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