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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시인 Jan 16. 2024

시작은 "느낌표 당신(feat.조형근)"

에세이  / 내 노래는 악보가 없어요.

- 내 안의 무엇 -


가슴에 무언가 있지만 그 실체는 알 수 없었다.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것이 안에 들어 있었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비어 있는 가슴.

하지만 그 비어 있는 곳에 무언가 떠다니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다른 둘이 하나같이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리듬 같은 소리가 허공 속에 바람처럼 흘러 다녔다.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고 손을 대면 느껴지는 바람처럼

귀를 기울이면 무언가 있지만

잡으려면 몇 가닥 남기고 흩어졌다.


달콤한 향기였다가 맑은 슬픔이었다가

가득한 환호에서 숨죽인 흐느낌까지

태양처럼 길고 별처럼 짧으며

눈송이처럼 하늘거리다 빗방울처럼 순간이었다.


그 무언가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 무언가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것을 만나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먼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결심이 필요했고

주저주저 한 걸음을 떼지 못한 채 흐름 흐물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한 걸음을 떼고 말았다.

그 한 걸음은 거리를 좁힌다는 의미조차 없는 걸음이었지만

그 한 걸음은 다시 한 걸음을 부르고 그 걸음은 다음 걸음을 불러서

한 걸음을 떼고 이어 같은 자리인 듯 지나고 보면 조금은 바뀐 곳에 서 있었다.

저 멀리 까마득한 한 점은 어느 순간 가장자리의 윤곽이 보이더니

알게 모르게 흐릿하다 선명하게, 하지만 선명하다가 다시 흐릿하게 다가왔다.


가슴의 노래를 귀로 처음 만나던 날, 온통 듣고 들어 닳아 없어질 만큼 만졌다.

지나온 삶의 그림자가 어쩌면 내 안의 노래일까?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기억과 마주치는 것이 음표 하나하나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래, 그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내 안에서 그리도 울렸나 보다.

사랑이라 말하기에 아득하고 추억이라 말하기에 선명한

그 사람과 나는 손을 잡고 참 오래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꺼내어 볼 시간이다.

가슴에 팔딱거리는 울림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느덧 노래가 될 때 만나는

그날의 숨결과 얼굴을......

어제에 있지만 오늘에 사는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노래이다.





시작은 "느낌표 당신(feat.조형근)"



시작은

망설임을 잠재운다.


 바람이 맑은 날 지하철을 타고 학동역에서 내렸다.

 햇볕은 투명한 바람을 지나 온통 쏟아지고 감당을 못한 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등에 맨 배낭 가방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애구 눈부셔..

 햇빛에 예민한 눈을 가진 나는 뱀파이어가 햇볕을 대하듯 얼른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논현동 언덕 끝에 있는 녹음실은 올 때마다 한 번쯤은 중간에서 쉬게 했다.

 높지도 않은 것이 순간 가파를 때는 산을 오르는 것 같단 말이야..

 100미터 출발선으로 나가는 선수처럼 이곳을 오를 때면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며 기대와 걱정이 햇볕과 그림자처럼 하나가 되어 따라다녔다.

 잘해야 할 텐데....

 길을 따라 걸으며 오늘 녹음할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사와 박자 리듬을 체크했다.

 노래는 참 좋단 말이야...

 자기 노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녹음하지, 하지만 내가 좋다고 다른 사람도 좋다는 법은 없다. 이 다양성이 드라마틱한 과정을 만드는 것이지만.

 노래가 길을 이끌며 작은 숨은 조금씩 가빠지고 몸 안의 온도는 점점 올라갔다.


 오르던 언덕이 평지스러워질 때 1층에 커피전문점과 만두집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여기 지하에 녹음실이 있다.

 한결은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동영아, 도착했어, 내려갈게."

 "네, 문 열어 놓았어요."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발자국마다 나의 심장박동은 반발 자욱 빨리 뛰었고, 맞이해 준 동영이를 따라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커다란 책상 위에 모니터가 2대, 좌우에 스피커가 놓여 있고 책상 아래에는 건반이 있다.

 책상 앞에는 커다란 창이 있고 창 너머에는 녹음실의 마이크가 보이고, 창 위로는 벽걸이 TV가 걸려 있었다.

 책상 뒤로는 긴 소파가 놓여 있고, 소파 앞에는 작은 테이블과 공기청정기가 놓여 있고, 소파 옆의 작은 탁자에는 봉지커피와 물티슈가 놓여 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깔끔했고 공기는 탁하지 않게 부드러웠고 고요한 정적이 스튜디오 안에 담겨 있었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좋지, 고마워."

 동영이가 커피를 타 오고 둘이 이런저런 가벼운 얘기를 나누었다. 가벼운 이야기 속에서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가벼움이란 떠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로워서 그 안에 머물면 편하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이 한마디는 출발 소리였다.

 지나온 망설임과 주저와 고민과 갈등을 한 번에 접어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힘찬 출발선의 총성이었다.

 "네."

 한마디지만 만 마디보다 더 커다란 대답이었다.

 시작이란 불현듯 다가오지만 항상 마음속에 있던 그 무엇일 것이다.


 한결이 카톡으로 보낸 가사를 동영은 모니터에 띄웠다.

 오늘 작업할 노래는 "느낌표 당신"이다.

 정통 트로트보다는 발라드 트로트의 분위기로 만든 노래이다.



"느낌표 당신(feat. 조형근)"


물음표 하나 찍으면 사랑이 있고

느낌표 하나 찍으면 당신이 있네.


한번 살아가는 인생살이에

사랑하는 사람 하나 있다는 것이


잘 살았다는 의미인 것을

멋들어진 인생이란 말이란 것을


물음표로 시작해서 느낌표가 되고

사랑의 마침표가 되어 주세요.


느낌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사랑에 느낌표.



트로트리 - 느낌표 당신 (Feat. 조형근)ㅣOfficial Audio (youtube.com)



 이날을 시작으로 만든 노래는 시간이 흘러 조형근 님이 노래를 불러주며 이렇게 앨범으로 나왔다.

 느낌표 당신이 나온 과정은 나중에 자세히 쓸 예정이다.

 노래가 나왔을 때 내가 만들었지만 내가 한 것 같지 않았다.

 이야 신기하네, 정말 나왔네...

 이 노래가 각종 음원에 올라오고, 유튜브에서 검색이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음원순위 와는 무관한 어느 구석에 처박힌 노래였지만, 나에게는 보물이었다.


 그 뒤로 작업을 계속해서 15곡 이상의 노래를 트로트리(trotree)라는 이름으로 음원에 발표했다.

 트로트리는 트로트(trot)와 나무(tree)를 합친 말로 트로트 나무라는 뜻이며, 뽕짝이 아닌 내가 존경하는 조용필 선생님과 좋아하는 임영웅 님과 같은 발라드 트로트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나를 위한 노래에서 누군가를 위한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의 마음으로 만들어 나갔지만, 나는 이태리 장인이 아니었고 나의 노래는 몇몇 지인들만 아는 노래로 머물렀다. 그래도 좋아하는 나의 노래가 생겨서 감사할 뿐이다.

 

 노래마다 숨겨진 사연과 예쁜 스토리가 있다. 하나하나 앞으로 적어 볼 참이다.

 나의 가난한 노래가사와 볼품 던 리듬과 박자에 아름다운 옷을 입혀준 동생 이동영에게 고맙고, 세상에 그 노래의 옷을 입고 처음 나서준 가수 조형근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저 우리 동네 아저씨 노래로 사라졌을 것이다.

몇 곡만 소개하면,


트로트리 - 바람의 꿈 (Feat. 조형근)ㅣ가사 Lyric (youtube.com)


트로트리 - 안개비 (Feat. 조형근)ㅣ가사 Lyric (youtube.com)


트로트리 (TROTREE) - 용숙아 (Feat. 조형근)ㅣOfficial Audio (youtube.com)



 이 시작을 시작하기까지 참 많은 일들과 과정이 있었다.

 이제부터 그 과정의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어 보려고 한다.

 중년의 나이에 실패의 바닥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시를 적고, 작사를 해서 작곡을 하고, 녹음을 해서 이렇게 앨범까지 내게 되었는지 순탄치 않았던 지나온 이야기를 적어 보겠다.


 지나고 보니, 내가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이고, 내가 스스로 칭찬하는 게 있다면 이것이다.


 그건.

 망설일 때

 나는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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