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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시인 Feb 07. 2024

김이나의 작사법

김이나의 작사법


 날이 밝은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 서점은 지하 1층에 있었다. 높은 층고의 탁 트인 공간의 중간중간 의자가 있었다. 바닥에는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보기 좋았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오가며 책을 정리하고 있다. 요즘 서점은 책을 사는 곳에서 책을 읽는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다. 내가 서점에 가는 이유는 책을 사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책에 인색하다. 솔직히 책값이 모자라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마음대로 사지 못한다. 서점에서는 책을 실컷 볼 수 있다는 마트 시식코너의 행복과 맛있는 책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아쉬움이 항상 공존한다. 책값이 만만치는 않아서 아껴서 사는 편이다.



 서점에 오면 나는 책제목 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제목은 작가들이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책의 첫인상을 통해서 일단 관심을 끄느냐 아니냐가 갈린다. 책의 제목과 디자인은 그래서 중요하다. 책에도 사람처럼 인상이 있다. 나는 책의 제목을 많이 본다. 디자인은 나쁘지 않으면 된다. 세상에 나쁜 디자인은 없다. 

 책의 제목을 보면 기발한 생각들이 많이 묻어 있다. 한때는 책의 제목들만 모아 보기도 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책의 제목과 잡지의 광고를 유심히 보라고 했다. 회사에서 돈을 들여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쓴 광고 카피는 말 그대로 돈잔치한 비싼 글이다. 그 말들이 나를 유혹하려는 그 덩어리 글들이 얼마나 나에게 공부가 되겠는가. 그 말에 공감이 많이 갔고 문득 책의 제목도 그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목을 보기 시작했다. 글의 반죽덩어리를 맛있는 빵으로 만들어서 먹기 좋게 포장해서 유혹하는 그 대표 얼굴이 제목이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의견을 들었겠는가? 그래서 글 제목만 보는 것도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언어의 온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좋은 생각... 같은 제목은 지금 다시 봐도 소름 끼치게 잘 지은 제목이다. 나도 한눈에 띄는 제목을 지어보려고 노력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거다 싶다가도 저게 튀어나오고, 저거다 싶으면 이게 튀어나온다. 모든 제목이 좋아 보이는 선택장애에 걸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제목을 보면 또 별로다. 내가 왜 이 제목에 끌렸지 하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갈대가 따로 없다. 어떤 책은 눈을 확 당긴다. 그 한 줄의 제목에 박히는 자석 같은 당김은 가슴에 한 줄의 밑줄을 긋는다.'아 저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한 줄은 감동을 주지만 한편으로 좌절을 부록으로 준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책의 제목을 모아라. 책의 제목은 치열한 고민이 낳은 빛나는 보석이다. 그 제목 한 줄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쌀을 씻고 뜸을 들였을까 상상이 된다. 쓰고 버리고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남은 한 줄의 빛나는 보석이 제목이다. 제목에는 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 제목은 꽃단장이다. 처음 미팅에 나갈 때 첫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꽃단장을 하지 않았나? 눈에 띄는 책의 제목이나 글이 있으면 핸드폰의 메모장에 기록하거나 사진을 찍어 두고 틈틈이 보곤 한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있지만 누워 있는 책도 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녀석들이다. 손을 대면 물고기가 물이 튀듯 글자가 튀어나올 것 같다. 최대한 느릿느릿 걸으며 책과 눈을 꼼꼼하게 마주치며 손을 내밀 책을 찾았다.



 '오 요놈 봐라 싱싱하구먼...'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고 유혹의 낚싯바늘에 물려 본다. 어떤 책은 그 한 걸음으로 끝나고 다시 내려지기도 하고, 어떤 책은 한 줄이 한 줄을 부르고 이어져 한참을 글 걸음 걷기도 한다. 가장 강력한 유혹은 지갑으로 손이 갈 때이다. 그 뜨거운 유혹을 버티기란 지갑이 너무 가볍다.  '모든 유혹마다 그냥 넘어가고 싶다.' 책의 바다에 풍덩 빠지다 보면 바다를 사고 싶다. 마트의 시식코너를 돌듯 서점의 모퉁이를  돌며 허기진 가슴을 달랜다. 때로는 가슴도 배고프다. 배만 채우지 말고 가슴도 채워줘야 하얀 호수에 황금용 한 마리 날듯 예쁜 글 한 줄 떨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무엇으로 허기 좀 달랠까?

시식코너의 맛보기는 즐거움이다. 공짜만큼 즐거운 맛이 어디 있을까? 양잿물도 꿀물로 바꾸는 공짜의 힘은 지갑의 두께를 고민하지 않는 작은 사치이다.


 글이 눈을 끄는 책도 있지만 얼굴이 예쁜 성형미인처럼 화장발이 좋은 책도 있다. 화장은 성의이다. 성의가 별거인가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지... 누워 있는 책 중에 병아리처럼 봄빛 띠는 책이 있었다. 새로로 책의 제목이 쓰여 있었다.

'김이나의 작사법'

그래 이름은 들어본 것 같다. 

김이나! 소위 잘 나가는 작사가이다. 일 년의 저작권 수입이 수십억이라고 기사에서 본 것 같다.


봄날의 노란 개나리를 집어 들듯 책을 들었다. 작사라는 노랫말을 쓰는 작업은 알지만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였다. 언뜻 들었던 책을 문득 보게 되었고 문득 보던 책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랫말을 쓰는 김이나 님의 글은 눈도 잡았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알다가 이태원 골목길까지 알게 되듯 작사라는 도시의 뒷골목을 걷게 되었다. 알지만 모르다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걸음은 가볍게 책장을 넘어갔고 이내 지갑을 열고 말았다. 가방에 넣어 집으로 고이 들고 와서는 읽어나가는 시간을 지나며 밑줄도 함께 쌓였다.


김이나 님이 작사를 하게 된 이야기와 어떻게 작사를 했는지 대표곡들을 예로 들며 흥미롭고 알기 쉽게 풀어 쓰여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에는 작사 법뿐만 아니라 앨범이 나오게 되는 과정도 함께 있었는데 작곡하는 과정과 방법도 쓰여 있었다. 예전에는 작곡을 하며 악보를 그렸는데 요즘은 미디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작곡을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으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알게 되면서 길이 보이는 것이다. 모를 때는 어둠이다가 알게 되면 호롱 불 하나 들고 길에 서게 된다. 하지만 호롱 불은 멀리 비추지 못하고 발아래만 비추기 때문에 길을 가기 위해서는 헤맬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어디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흥얼거린 노래를 음악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고는 어쩌면 자신도 작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곡이 별거인가? 마음속에 있는 그림을 스케치하다가 그림이 되듯, 흥얼거리다가 노래가 음악이 되는 것이지. 현재의 많은 작곡가들이 악보를 그리지 못하거나 잘 모른다는 것도 생각지 못한 거이며, 한편으로 이것이 용기가 되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은  좌절이지만 방법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내가 미디를 베우든 전문가를 찾든 둘 중에 하나면 작곡이 가능한 것이다.


작곡은 뭘 좀 알아야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다. 피아노도 치고 악보도 보고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오랜 시간 내공도 있어야 하고 창작의 재능도 있어야 하기에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평범한 우리는 매일매일 음악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른 시간만 생각한다면 그 오랜 세월은 우리 자신을 음악가로 키우고 있었다. 타고 나는 재능도 있지만 만들어지는 재능도 있다. 시간의 힘이 특별한 재능이다.  미식가가 요리사가 되듯 듣는 사람이 작곡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순간 이미 작곡가이다.


책을 읽다가 한결은 작가의 말이 시작되는 책의 여백에 한 줄을 썼다.

'노래는 귀로 듣는 시, 흘러가도 빈틈없이 메워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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