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필시인 Jan 30. 2024

발을 떼면 걸을 만 해!

잔잔한 벚꽃 노래를 들으며 읽어 보세요.

트로트리 (TROTREE) - 벚꽃연가 (Feat.임세민)ㅣOfficial Audio (youtube.com)



첫걸음이 만 걸음.


시작이 반이다.

이미 첫걸음을 떼는 순간 반은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첫걸음이 얼마나 힘들던가...

만 걸음의 무게를 이겨내야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첫걸음은 만 걸음의 무게를 이겨냈기에 

이제는 걸을만하다.


나는 음악의 '음'자도 몰랐다. 

피아노, 기타는 물론 심지어 피리조차 못 분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단 1도 없다.

아 있다. 손뼉 치기, 내가 유일하게 다룰 줄 아는 악기였다.

요즘은 좀 고급지게 핸드폰의 메트로놈을 써서 박자를 맞춰 노래한다.


악보를 아느냐?

당연한 걸 물어보는 것도 작은 실례이다. 볼 줄도 모르고 그리는 건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냐.

들어보면 안다.

귀를 막지 않을 정도지만 계속 듣기에는 매너의 옷을 입고 인내의 음료를 마셔야 한다.

내 삶에는 음악의 'ㅁ'받침 하나 없었다.

그런 내가 작사, 작곡을 하고 프로듀싱을 한다.


"네가?"

내가 노래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정말로?"

그다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어떻게?"

몇 곡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은 이렇게 물어본다.

네가, 정말로, 어떻게는 늘 따라다니는 한 세트였다.



노래의 구조가 이해가 되자 조금씩 그 틀에 맞춰 글을 써 보았다.

나는 음악을 모르지만 내게 노래가 있었다.

40년 가까이 들어온 노래는 내 몸 안에 녹아 혈관에 흐르고 있었다.

오래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음악 듣기 인생 40년이면 이미 전문가 고인 물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모두가 말이다.

노래를 좋아하고 많이 들었다는 것. 이것이 나의 유일한 자산이었다.


틀에 맞춰 글을 쓰다 보니 무언가 음이 만들어지면서 노래의 스케치가 되었다.

악보를 모르는 나는 조금씩 만들어진 틀을 핸드폰에 녹음을 했다.

하나의 노래가 완성되기까지 수백 번을 불러 보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그걸 핸드폰에 녹음을 하고 지우 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노래는 가사만 보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가사를 보지 않아도 노래가 되면서 하나의 노래가 탄생했다.


좋은 노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도 있었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깨는 도공의 심정으로 좋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렸다.

그러다 보니 한쪽 구석에 제법 예쁘게 생긴 노래들을 모아 둘 수 있었다.

아 이거 한번 앨범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데...

이련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악보를 만들기는 불가능하고,,, 뭐 방법은 있을 것 같은데 방법이 없었다.


이때 우연히 어빙 벌린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어빙 벌린(Irving berlin, 1888~1989)은 800여 곡의 작품을 남긴 미국 역사 중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다.

작곡을 하기 전에 그는 부유한 집안도 아닌 평범한 집의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듣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그의 작품 중 하나이다.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42년에 어빙 벌린이 작곡했고 빙 크로스비가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들으면 옅은 밤에 눈송이가 잔잔히 떨어지는 크리스마스의 밤이 떠오른다.


그는 음악 공부를 한 적도 없으며 피아노를 칠 줄 몰랐고 악보를 보거나 만들 수 없어서 악상이 떠오르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음악을 몰라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에게는 어빙 벌린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음악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작곡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어빙 벌린은 나에게 작은 불씨가 되었다.

음~ 나도 한번 이렇게 해볼까...



상상해 보면, 

어느 날 어빙 벌린은 작곡을 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때로는 어느 날이 매일 같은 날이었을 것이다.

연인의 얼굴을 떠올리던 그 어느 날이 매일 같은 날이었던 것처럼 생각하던 노래를 듣는 노래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어빙 벌린은 친구에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노래를 만들기로 했어?"

친구가 물었다.

"누가?"

아무렇지 않은 듯 어빙 벌린은 대답했다.

"내가."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너는 음악을 배우지 않았잖아?"

어빙 벌린이 대답했다.

"그렇지, 배우지 않았지."

친구의 의문은 물음으로 이어졌다.

"피아노 칠 줄 모르잖아?"

"모르지."

"악보는 알아?"

"아니"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친구는 다시 말했다.

"내가 알기로 가수처럼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뜸을 들이던 친구는 대놓고 물었다.

"음악 공부도 하지 않았고, 피아노도 못 치고, 악보도 모르고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는데 그럼 대체 무엇으로 노래를 만들겠다는 건데?"

어빙 벌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내 안의 노래."


어빙 벌린이 작곡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가 믿었을까?

아무도 믿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또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은 오묘하다.

"너는 작곡을 할 수 없어, 너는 작곡가가 아니잖아."

친구가 어빙 벌린에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누가 어빙 벌린처럼 물었다면 누구나 그렇게 대답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미국 역사가 인정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자, 상상을 이어가 보자.

어빙 벌린은 음악가를 찾아갔을 것이다.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음악가가 말했다.

"악보는 가지고 왔나요?"

어빙 벌린이 말했다.

"악보가 없어요."

음악가는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악보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노래를 만들지요?"

어빙 벌린이 대답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예?"

음악가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빙 벌린은 다시 말을 이었다.

"노래를 만들 수는 없는데 부를 수는 있어요. 부르고 만들면 안 될까요?"

어빙 벌린에게는 노래는 만들고 부르는 게 아니라, 부르고 만드는 것이었다.


어빙 벌린은 자신이 피아노를 치거나 악보를 그릴 줄 몰랐다.

그래서 작곡을 할 때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음표를 흥얼거리면 피아노를 치고 악보로 만드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실제 그렇게 어빙 벌린은 800곡이 넘는 곡들을 만들어 남겼다.



그렇게 어빙 벌린은 노래를 음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음악을 배우지 못하고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고 악보를 보거나 그릴 줄 몰랐지만 수많은 곡을 남기며 훌륭한 음악가로 남았다.


어빙 벌린의 이야기를 알게 된 나는 오래 생각을 하다가 한번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혹시 음악을 몰라도 어빙 벌린처럼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얘기했다.

"나 음악 앨범을 하나 내려고...."

친구는 말했다.

"뭐?"

"가수가 하는  노래 앨범 말이야. 나도 한번 내려고..."

친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 나 모르게  음악 공부했어?"

"아니."

"그럼 피아노 칠 줄 알아? 아니면 다루는 악기 있어?"

"아니 피아노 칠 줄 모르고 다루는 악기 없지."

친구는 고개를 더 갸우뚱거렸다.

"함께 노래방에 한두 번 같이 간 것도 아닌데, 너 노래도 그냥 평범하잖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고맙다, 못 부른다고 하지 않아서."

친구가 다시 물었다.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아?"

"아니 몰라."

친구의 의문은 점점 불신으로 옮겨졌다.

"아니 대체 뭘로 앨범을 낸다는 거야?"

"내 안의 노래로"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친구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의지가 있으면 방법을 찾으면 된다.

방법이 없어 보여도 방법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이것이 시작이었다.

하고 싶다면 방법은 그다음이다.


어빙 벌린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은 작은 씨앗으로 떨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혹시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라났다.

이전 02화 시련만이 공평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