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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리 Nov 08. 2024

매일 글쓰기

휴지박스가 알려 줬다. 이런 거라고...

언제 이렇게 찼지!


하나씩 모을 때는 언제 비우나 했는데

비울 때마다 '언제', '벌써' 하며 놀란다.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무렇다.




내 책상 옆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스틱으로 된 아메리카노와 버리는 담은 작은 종이 박스와 커피포트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포트의 스위치를 올리는 게 첫 번째 일이다.

한 모금의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며 기대이고 안심이다.


물이 끓어서 '철컥' 소리가 나면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끝났다.

커피스틱을 뜯고 아메리카노를 타서 한 모금 마시면 찌릿하게 식도를 타고 안으로 들어간다.

정신이 번쩍 들고, 하루가 이제야 깨어난다.


커피스틱을 뜯어 버리는 작은 종이박스가 있다.

아메리카노가 담겨 있던 박스를 다 쓰고 나서 미니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커피스틱을 버린다.

별도로 쓰레기통을 놓자니 왠지 거창하게 보였다.


버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고 아무 생각이 없다.

뜯고 커피를 타고 버리고... 반복된다.

전체를 비우기까지는 여유가 있다.

'언제 차겠어.' 이런 생각도 없다.


하지만 문득 버리다 보면 가득 차 있다.

'언제 이렇게 찼지.'

매번 상자를 비울 때마다 비우면서 매번 놀란다.


하찮은 게 어느 날 하찮치 않게 되었다.

아침마다 하나씩 먹는 영양제통이 그랬고, 조금씩 짜서 쓰는 치약이 그랬고, 언제 차나 안심했던 쓰레기통이 그랬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돌게 되는 호수공원처럼 언제 벌써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깨달음이 있어 시작한 일이 매일 글쓰기다.

매일 한번 글을 써볼까?

버리다 보면 차는데 쓰다 보면 쓰지 않을까!

커피스틱도 버리다 보면 차는데 글도 쓰다 보면 늘겠지.....

그래서 시작하게 했다. 매일 끌 쓰기.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매일 쓰는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부담감이 글을 쓰게 했다.


하나의 방법을 찾았다.

쿠션이 필요했다. 부담감을 줄여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5일 치 이상 예약글을 써 놓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매일 글을 쓰니까 저금한 글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혹시 펑크 나도 투입될 글이 있었다.

그래서 예약글을 최대한 늘이는 방향으로 글을 쓰니까 매일 글이 써졌다.


매일 쓰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매일 쓰는 것이 제일 쉽다는 모순의 진리.

철학은 책에 있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휴지박스에 있다는 반전.

선생님의 이름이 휴지박스라니....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면 나중에 이렇게 가득 찰까?

이런 생각으로 시작해서 1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마도 계속할 생각이다.

멈출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골프 선수가 매일 스윙연습하듯 계속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하는게 아니라 내가 즐겁기 위해 한다.


매일 글쓰기엔 양을 정하지 않았다.

글로 먹고살 수 없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내 목표는 한 줄이다.

잘 썼느냐는 내 목표가 아니다.


혹시 오늘은 첫 번째 줄이 나를 멀리까지 데려다줄 수도 있다.

그러면 고마운 일이다.

짧은 글이어도 좋다.

썼으니 된 일이다.

가면 가고 멈추면 멈춘다. 그걸로 좋다.


어렵다. 매일 쓴다는 게,

쉽다. 한 줄이면...

매일 쓰는 게 어렵지만 매일 쓰다 보니 할만했다.


내 아이큐는 평범하고 지능도 보통이고 능력도 평균이다.

하지만 나에겐 꾸준함이 있다.

나는 천재가 아니지만, 꾸준함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뭐라도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도 어제처럼 커피를 마시고 내일도 마시다 보면 가득 차는 휴지박스처럼 무언가 작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가득 차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오타니 선수가 쓰레기를 주우며 행운을 줍는다고 생각하듯, 무언가는 누군가의 소망을 갖고 있고 그걸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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