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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늘이 Jun 02. 2019

율율, 샤워를 하는 순간에도 예술가

일주일이 좀 넘었던 율율의 유치원 방학은 리댜 고모가 사는 아랍의 아부다비 부럽지 않은 폭염이 절정을 찌르며 계속된 가운데 짧은 여행을 몇 차례 했고, 몇 주가 지난 느낌이다. 현진씨의 엄마인 외할머니 기일을 위해 간 안동 시골에서 율율은 아이돌이라도 된 듯 여러 친척들의 열렬한 리액션을 확인하며 최선을 다해 엔터테인을 해 보였다. 가수 오디션 프로에서 미션을 하듯 개다리 춤으로 시작한 몸짓은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로 변하고 급기야 외삼촌의 에어 복대를 머리에 쓰면서 시골집에 있는 온갖 소품을 이용한 엉뚱함을 끊임없이 선보였다.  


율율은 정확히 1살과 2살 때 어린이집 재롱잔치에서 그 말로만 듣던 <무대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는 아이>였다. 무대에 서서 나와 남편 재익의 눈을 번갈아 응시하면서 끝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울었다. 후우. 나까지 울상이 된 그날 연습할 땐 제일 신나게 했다며 어린이집 교사가 개인 폰으로 찍어놓은 아이 영상을 위로 차원에서 보내줬다. 너무 많은 청중이 모이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래서 <공황장애> 비슷한 게 온 건가. 무대 공포증이 있나.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 도대체 세상을 잘 살아갈까를 그날 이후 심각하게 고심했던 내가 요즘은 어딜 가나 공공장소에서 <행위 예술>을 서슴지 않는 율율 때문에 민망하기 일쑤다.  


어젯밤엔 잘 시간이 조금 지나서 5분 <퀵 샤워>를 시켜줬는데, 율율이 나를 씻겨주겠다며 등에 비누 칠을 시작하더니 흥얼흥얼하고 고사리 같은 아기 손 느낌의 어깨 마사지도 곁들여준다. 햐. 샤워와 마사지를 해주는 남자라니. 비누 칠을 너무 간지럽게 해주는 율에게 대견함을 섞어서 <아휴 간지러~ 아래쪽도 해야지~> 했더니 <지금 엄마 등에 있는 그림 위에 똑같이 그리고 있는 거야~ 가만있어> 라고 말한다. 풋. 난 한참을 가만히 간지러워야 했다. 내 등에 있는 남자 손바닥만 한 타투 그림을 비누를 꽉 쥔 채 따라 그린 거다. 샤워를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할 줄이야.  


어느 날 유치원에서 교사에게 경고를 받은 이후 율율은 오전에 하 나, 오후에 하 나만 만들고 그리기를 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양의 작품을 만들고 그려대서다. 미술을 전공한 나와 남편 재익의 예술가 DNA를 물려받은 것이 유치원 교사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창작의 열정은 열정이고, 과학의 원리와 실험도 무척 좋아해 오늘 긴 방학 이후 오랜만에 과학 수업에 갔다. 공기의 힘을 이용한 <호버 크래프트>를 만들고 또 다른 실험을 했다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게 빨갛게 상기된 볼을 움직이며 설명했다.  


가끔 <I changed my mind> 라고 말하며 율율은 미래의 꿈이 과학자에서 유치원 무지개 반 선생님이 되는 거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에게 과학자가 되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레고를 직접 만들거나 실험할 수 있고, 선생님들을 가르치는 큰 선생님도 될 수 있다고 블라블라 구차하게 설득한다. 예술은 엄마가 평생 해왔고, 아빠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하니 너는 네가 좋아하는 #레고 와 관련한 회사를 차리거나 #실리콘밸리 에 가서 #구글 에 가거나 혹은 #페이스북 의  #마크저크버그 뒤를 이어도 (너무) 좋다고 말했다.  취미로 드론과 움직이는 러봇을 만드는 엉클 싸밋처럼 #엔지니어 나 네가 좋아하는 #과학자 가 되렴. 2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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