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늘이 Jun 10. 2019

영혼 가득 넣어서 <엄마 아빠... 고마워>

하루하루가 감사한 라이프 

현진씨가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까지 먼 길을 오셨다. 엄마가 무겁게 들고 온 가방에서는 음식이 한참 나온다. 나이 70에 옷가게 일을 하며 집안 살림에 건강이 나빠지는 아빠까지 챙겨야 하는 엄마. 나는 가슴뼈가 등 쪽으로 눌리는 느낌이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엄마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통화 버튼을 눌러서 어제 생일이었던 욱택씨를 바꿔준다. 어제 작은 수술을 받고 병원 마취약에 취해있던 나는 아빠의 음력 생신을 하얗게 잊었다. 불효년. 죄송한 마음에 <아빠아-> 했지만, 욱택씨는 바로 <됐고, 몸 관리나 잘하거라. 너는 항상 걱정이구나...>며 끝말을 흐린 채 울먹인다.  


과학 실험을 집에서 한답시고 앞머리를 가스 불에 태워 먹고, 집에 하나 있는 멀쩡한 라디오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을 완벽히 하지 못해서 못 쓰게 만들고, 문제아 친구들과 잠시 어울렸던 중학교 시절엔 3년간 학교에 출석한 모든 날을 당시 대기업을 상대로 회사에서 잘 나가던 욱택씨가 출퇴근을 나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하며 운전기사 및 보디가드 역할을 했다. 


학교가 끝나고 (문제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다가도 교문 앞에 아빠 차가 있는 걸 보고 애들은 일제히 나에게서 멀치감치 떨어졌다. 안 그랬다가는 공군기지에서 들릴 법한 큰 데시벨로 아빠의 이유 없는 날카로운 <불호령>이 귀에 꽂혔으니까. <떨어져 이놈들!!> 정말 창피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 싫었던 아빠의 <과잉보호>가 아니었으면, 아마 당시 <노는 애들> 사이 유행이던 <집 나가기> <시비 걸기> <쌈박질> <파마하기> <귀 뚫기> 등을 두루두루 하면서 오지게 사고를 치고 다니다 <어떻게> 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욱택씨 둘째 딸 지켜줘서 고마워.> 나와 형제들에게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낸 적 없는 현진씨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철없이 스스로를 방관했던 허물이 한 겹이 벗겨지고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난 그 90년대에 과목별로 과외를 받고 학원도 다녔다. 서울대에 다니는 이웃집 언니에게 개인 그림 과외를 받으며 ㅡ이미 진로가 정해져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는ㅡ 매주(매주!) 부모님과 쇼핑을 하면서도 사춘기가 돼서는 때맞춰 반항을 밥 먹듯이 하는 재수 없는 10대였다. 가족사진을 찍는 날  친구들과 더 놀지 못해 입이 나와 렌즈를 쏘아보는 살기까지 느껴지는 내 눈빛과 유행을 따른다고 새끼 지렁이를 엊어 놓은 것처럼 길고 얇게 올려 그린 눈썹이 증명한다. 남들이야 그렇다 치고 사랑과 돈을 투자하며 옥이야 금이야 애지중지 키우던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지금의 내 또래였을 현진씨와 욱택씨를 지금 만나서 진한 위로와 사과를 하고 싶다. 그리고 10였던 나도 만나서 함께 놀고 얘기도 하고 싶다. 아! 욱택씨에겐 절대 <주식>엔 손대지 말고, 암사동 우리 집 앞 상가 건물을 꼭 사라고 아니, 강제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해 줘야지.


방항 지수 최대였던 10대 혈기로 당시 학교에서 금지하는 건 전부 다 했던 친구들을 따라 충분히 비뚤어질 수 있던 나를 버리지 않은 부모님이 감사하다. 그들은 여전히 다 어른이 된 나를 또 다른 이유로 걱정한다.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건 어느 대에나 있는 일이다. 다행히 아이를 낳고 대학원을 다니며 노랑머리를 해가지고도 얼마든지 밝은 생각을 하고 기분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희망을 안겨드릴 수 있었다. 영혼을 가득 넣어서 <엄마 아빠 고마워. 이젠 잘할게요.> 2018.2

작가의 이전글 한국에 더 오래 산 유럽인 그리고 나의 미니멀 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