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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늘이 Aug 23. 2019

영상 보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소중한 내 라이프-죄책감 주머니를 벗어던지자 

영상 보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유투버 세상에선 1일 1 영상을 올리는 게 트렌드인 이 시국에?)


술 퍼마시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나 같은 자유 영혼에 술이 빠지면?…)


핸드폰 중독자가 따로 없다.  

(이건 일말의 핑계가 없다)


눈을 감는 날까지 내 인생에 더 집중하고, 명상을 더 많이 하고, 독서는 고요함 속에서 하고 사색을 하며 깨달음을 얻음으로 그간의 어리석은 죄책감은 내려놓기로 했다. 


온종일 핸드폰이 그림자처럼 혹은 내 분신처럼 함께 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평소에 내 아들에게 다그치는 말이 설명해준다. “브레인이 멈춰서 바보가 되는 거지 뭐!”라며 영상 보기와 독서의 다른 점을 자주 반복하여 일러준다. 책을 읽어야 사고하는 능력과 습관이 생긴다고. 


나는 지식과 정보를 얻음에 즐거움을 느끼고 누구보다 마음에 드는 글과 문장을 수집하며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며 무료 영화, 미드, 한드를 버릴 수 없는 습관은 스마트폰 시대를 전적으로 탓해버릴까? 좀비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종일! 수십 개의 어플을 누르고 또 누른다. 날씨 확인, 계산기는 필수, 길 찾기도 필요하고, 사전 검색 등등. 유용한 정보를 빠른 시간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물론 있지만 종일 그림자처럼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내 일상에 답답함과 죄책감이 밀려오는 아침이다. 


당신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지금 이 시각 자신이 하는 일(혹은 ’짓’)을 보면 알 수 있음에 그 죄책감이 쌓여 오늘로써 (죄책감) 돌탑의 꼭대기에 엄지손톱 만한 자갈 하나를 더 올렸다가는 전부 다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하와이 공항에 가면 손님을 반기며 걸어주는 꽃 매달 만한 크기의 <죄책감 주머니>를 달고 다닌다. 옥에 갇힌 죄수처럼 목에 달고 다니면서도 기꺼이 영상을 보거나 들어가며 동시에 해야 할 일을 했다. 


이를테면, 설거지하며 영상 보기, 자전거 운전하며 유튜브에서 유용한 강의 듣기, 책을 읽으며 영상 듣거나 보기. 웨이러 미닛! 가장 죄책감 덩어리가 컸던 대목이다. 사색이 필요하고 사고를 하면서 읽어야 하는 독서를 하면서 시끄럽거나 화면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탐욕스러워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영상과 함께?! 


독서를 음악도 없이 온전한 고요함 속에서 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생각하면 <죄책감 목걸이>는 내일 아침 사약을 받기로 한 죄수가 걸고 있는 내 키보다 더 크고 무거운 나무 문짝만 한 게 내 머리를 통과해 어깨를 짓누른다. 나의 아둔함과 이기심이 이 말도 안 되는 짖을 계속 무던하게 일삼은 것이다. Wake up dude!


이제는 사약을 받기 직전의 죄수가 목에 걸고 있는 방 문짝만큼 크고 무거운 죄책감을 내려놓으련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을 24시간 가지면서 <이러고> 살다가는 스스로 죄책감에 눌려 내 멘탈이 바닥으로 꺼지든 공중분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구하기로 하자. 거대한 죄책감 주머니를 벗어던지고 사색과 명상을 하기로 하자. 


소중한 내 인생에 더 집중하고 신중하기로 하자. 눈을 감는 날까지 고요함 속에 더 많은 독서를 하고 사색을 하겠다. 그래야 이 불안증에 미쳐버릴 것 같은 죄책감을 떨치고 죽는 날이 되어도 편히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더 나은 나의 다음 생을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자. 요가 선생님이 이번 생을 잘 살아야만 다음 생에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 말에 <현재> 그러니까 <지금>에 더 신중해진다. 


아! 술은 퍼마시기보다 미니멀리스트답게 독한 술 한두 잔으로 끝내기로 하자. 술이 약한 나에게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다음날 하루를 망치는 어리석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자. 합리적이고 심플하게.



*<타임 푸어>가 신간으로 나왔을 때 딱! 육아와 야근에 절어있던 내 처지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이 책을 다시 들춰보며 기억할 부분을 다시 확인했으며 육아와 시간 컨트롤을 위해 이렇게 좋은 조언이 있을 수 없다고 다시 한번 곱씹었다. 오늘 기록한 에세이와 이 책은 무관하지만, 어찌 보면 인생을 살면서 좀 더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한다는 맥락이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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