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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늘이 Aug 25. 2019

설계자들 VS.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책 이야기| 김언수 VS. 김영하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고객님?” 탐욕과 명예욕이 불러오는 저 밑 감추고 싶은 장부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내용을 경쾌한 언어로 이어가는 작가 김언수 특유의 세계관을 진공관에 갇혀서 보는 듯한 장편소설 <설계자들>의 대장정이 끝나고 바로 읽게 된 책이 너무 예쁜 표지의 신간 (옆에 너무 예쁜 다이어리 굿즈가 있어서 더 손이 갔을지도) 김영하 단편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낀 것을 목격하며 출근하여 바로 탄 버스에 ㅡ딱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처럼 온갖 대재앙이 쉼 없이 밀려든다. ㅡ 대형 트럭이 정면으로 들이받은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소설 속 주인공마저 엘리베이터에 갇혀 생사를 가르는 극적인 탈출을 하는데도 주변인들의 무관심과 주인공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도 나오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영락없이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를 순서대로 보는 기분이 들다가도 이 바쁜 세상,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극에 달했다는 일침인 것 같아 씁쓸함이 남는다.  


김영하 신간 속 두 번째 단변 이야기에는 살인사건, 그다음엔 흡혈귀 이야기가 나오지만 역시나 이토록 무거운 제목이 씐 징검다리 위를 팅커벨이 되어 사뿐사뿐 걷는 느낌이다. 


영화 <킬빌>이나 <존 웍>에서나 나오는 화면은 3분의 2 이상이 인물에 따른 영화 OST 몇 개가 흘러나오면서 핏물이 끝없이 튀고 누구의 비명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 주인공 자객이나 죽는 역할을 하는 사람 너나 할 거 없이 사람 키 만 한 칼을 쌍으로 휘두르고 총알이 무제한으로 나오는 듯한 쌍권총이 발사되는 장면에 정신이 없는데 말이다. ㅡ영화 <킹스맨>처럼 지구에 사는 인간이 거의 죽어가는 장면이 나와도 소설 <설계자들>이나 저런 영화처럼 싸늘하고 피비린내 나지 않았는데. 


표현의 방식. 그러니까 <문장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킹스맨>은 수십만 명이 죽는 순간마저도 더는 경쾌할 수 없을 만한 <타이타닉> 호에서 벌어지는 파티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열정적인 연주가 터져 나오며 주인공의 의상과 영화 전체의 색감도 화려하고 원색적이다.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무척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미없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입만 열어도 주변 사람들이 빵빵 터지는 뭐 이런 사례와 약간 비슷하다고.


돈을 받고 칼을 휘둘러야만 하는 운명의 주인공과 서로 베어 죽이는 또 다른 암살자들과 무겁고 사연 깊은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긴 소설 <설계자들>에서 빠져나오자 마자여서 그런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일일 아침 드라마를 보듯 복잡할 수 있는 주제지만 복잡한 마음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설계자들 #김언수 #문학동네 

#엘르베이터에낀그남자는어떻게되었나 #김영하 




<설계자들 |문장>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고객님?

이른바 암살의 아웃소싱 시대가 시작된 사회에서 암살 지시를 받는 래생과 동료 설계자들의 이야기가 김언수 작가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너무나 충분하다. 래생이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 독서대와 스탠드 그리고 책 속 대사들이지만 맥락 없는 매력에 빠지는 즐거움.


“홍차에도 위스키를 타나요?”

“타면 타는 거지, 안 될 것은 또 뭔가?”

강한 것이 세월에 깎여 조금씩 부드러워진 인상이랄까.


나 아직도 전셋집 살아.

래생은 이 신뢰할 수 없는 삶이 놀라웠다. 


“무리에서 빠지면 사자라도 들개의 표적이 되지”


“사전이란 참 좋은 것이지. 감상적이지도 않고 징징거리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저자들의 그 역겨운 잘난 척을 안 봐도 되니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결국 하는 짓은 똑같았다. 


변기가 더럽다고 바지에 똥을 쌀 순 없어.


책들의 고유한 운명이란 왕에게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고 평생을 처연한 기다림 속에 처녀로 살다가 늙으면 궁궐 밖으로 내쳐지는 궁녀들처럼 심심하고 참담한 것이었다. 


하루에 두 갑씩이나 피워대는 저질 폐로 나중에 도망이나 제대로 치겠어?


아침의 캔맥주에는 쓸쓸함과 몽롱함과 부적절함 그리고 깊은 밤을 지나와서도 끝내고 싶지 않은 무책임에 대한 욕망이 있다. 래생은 그런 무책임한 느낌이 좋았다. 


누군가 다녀갔다면 거의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없어야 할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게. 요 몇 년 통 안 보이네. 죽었나?


물만 잘 나오면 되지, 굳이 한 우물만 팔 건 도 뭐냐? 석유 케냐?


인생 갑절로 더 산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똥물 좀 덮어쓴다고 똥이 되는 건 아니라네. 


백신과 바이러스를 둘 다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한쪽에선 공포와 불안을 주고 다른 쪽에서는 안전과 평안을 보장한다. 도무지 망할 수가 없는 사업인 것이다. 


하여간 그놈의 Y염색체가 문제야. 여자들에겐 우아하고 융통성 있는 두 쌍의 X염색체가 있어 서로를 보완해주는데, 남자들의 멍청한 Y염색체 안에는 발기하고 발끈하는 기능밖에 없거든. 


똑똑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미친년이었구나?


세상이 왜 이 모양인 줄 알아? 너구리 영감과 한자 같은 악인 때문에? 그들에게 청부일 거리를 주는 권력의 배후 때문에? 아니야. 악인 몇 명이 세상을 어찌할 순 없어. 세상이 이 모양인 건 우리가 너무 얌전하기 때문이야. 


포가 뒈지든 차가 뒈지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어차피 장기를 계속 두면 결국 다 뒈질 놈들인데. 


누구나 당신만 한 사연 정도는 있어. 혼자 비장한 척, 뭘 다 아는 척 까불지 마. 


그냥 살아. 혼자 세상 다 구하고 혼자 죽고. 그게 무슨 개지랄이냐. 네가 예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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