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라 등에 핀 사랑
아들과 함께 집 근처 탄천으로 수서곤충을 잡으러 갔다. 햇살은 투명했고, 구름은 게으른 새처럼 느릿하게 흘렀다. 물결 위로 부서지는 빛이 반짝이며 연못을 감싸고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모네의 수련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꿈의 경계 위에 떠 있었다. 연못 가장자리에 개구리밥이 초록의 점처럼 흩어져 있었고, 수련은 붉은 기가 도는 잎을 조용히 펼쳐 늦가을의 햇살을 품었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물자라 한 마리와 장구애비 한 마리를 만났다. 아들은 작은 손으로 물자라를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아빠, 이게 물자라야?”
그 한마디에 웃음이 났다. 신기함과 두려움이 섞인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잠시 잊고 있던 어린 나를 보았다. 자연 앞에서 숨죽이며 경이로움을 배우던 그 시절의 나를.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물자라를 일주일만 함께 지내기로 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속에서 물자라는 고요히 떠 있었다. 물 위와 아래의 세계를 잇고 있는 작고 묵직한 존재처럼.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 물자라의 부성애. 암컷이 낳은 알을 등에 붙이고, 부화할 때까지 그 무게를 감내하는 수컷. 등 위의 알이 마르지 않도록 수면 위로 떠올라 공기를 건네고, 물새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도 물속으로 숨지 않는다. 그 작은 등 위에는 수많은 생명과 한 생애의 책임이 얹혀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등을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따뜻한 등을 아이의 세계가 자라나는 밭으로 내어주는 일. 세상의 바람을 막고 아이의 꿈이 돋아날 수 있도록 묵묵히 받쳐주는 일.
한때 나는 결혼을 할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사랑도 책임도 그 무게도 그 당시엔 내 삶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먼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내가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 아이는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가 열이 오르던 어느 새벽, 나는 그 작은 몸을 품에 안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응급실로 달렸다. 가슴은 쪼개질 듯 뛰었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니기를,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기를. 그 순간 처음 알았다. 내 안에 이렇게 간절한 누군가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가 된다는 뜻임을.
물자라가 등을 내어주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건 사랑이다. 사랑은 종을 가리지 않는다. 그저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자연이 가장 오래전에 만들어 둔 언어일 뿐이다.
아들과 함께 보낸 그날의 탄천은 아마 오래도록 우리 둘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맑은 하늘, 반짝이던 물결 그리고 한 마리의 물자라. 아이가 훗날 그날을 떠올릴 때, 그 기억이 빈자리 없이 따뜻하길 바란다.
그때 그 연못처럼. 햇살이 물결 위에 내려앉던 그 순간처럼. 그리고 물자라의 등에 핀 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