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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oo Jul 09. 2024

대물림 되는 양육방식의 악순환 끊기

추신으로 짧은 응원글

오늘 만4세인 첫째 아이의 유치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요즘 유치원 영어 수업이 하기 싫다며 떼를 강하게 부려서, 수업이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집에 온 아이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보자 선생님이 재미없고 무섭다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지 묻자, 재밌게 한다고 답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아이가 영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전에, 영어 유치원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이런 모습이 ADHD성향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아이가 영어 수업에 참여하도록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아내는 저의 의도를 이해했기에 함께 아이와 대화했습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니,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영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많이 어색했고, 이 어색함을 무서움으로 착각했던 거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선생님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더 걸리면서, 혼자 겉도는 느낌을 받자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던 겁니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선천적으로 불안이 높고, 질문을 받으면 과도하게 긴장을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두려워합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매번 답을 할 수 없는 건 아이에게 당연한 일인데도, 아이는 이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겁니다. 이것이 수업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였지요. 벌써부터 아이의 모습에서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성향이 느껴지는 걸 보면서, ADHD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이런 유별난 모습을 보면서, 저의 지난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ADHD커뮤니티에 이 고민을 올리니, 많은 ADHD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고 공감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거기서 수업을 듣는 다른 아이들도 다 알기 때문에 참여하는 게 아니야. 하고 싶을 때에만 하고, 재미있을 때에만 하는 건 잘못된 거야.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거고, 재미있지 않아도 해야 하는 거야. 그게 규칙이고 약속이야. 그리고 원래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해. 예전에 동화에서 마녀가 나오면 무서워했던 거 기억나? 그런데 계속 보니까 어때? 괜찮지? 계속 보면 괜찮아. 심지어 영어 선생님은 마녀도 아니잖아?” 아빠와 엄마의 말을 들은 아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해도, 나는 아직 어리니까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지~”


저는 ADHD인이기 때문에, 아이도 ADHD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아이가 ADHD인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난관에 봉착하면, 도전보다는 회피부터 먼저 떠올리는 모습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어디서 배워온 건지 아이는 언젠가부터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ADHD 성향을 가진 아이들일수록 더 쉽게 떠올리고 자주 사용하는 핑계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맛있는 간식을 매일 준비하는 건 너와의 약속이기 때문이야. 만약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안 챙겨줄 수도 있지~’하면서 간식을 주지 않아도 괜찮겠어?”하고 물었습니다. 간식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니요”하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턴 수업을 들어가기로 양손 도장과 함께 약속했습니다. 


다른 유치원생들도 영어 수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혼자 빠질 수 없다는 생각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이때 아이가 ‘혼자서 빠질 수도 있지’하는 생각을 한다면, 이런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나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ADHD인의 대인관계와 개인의 성취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생각은 보통,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싫은 마음과 회피반응이 작용했을 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자기 효능감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ADHD성향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녀의 ADHD성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ADHD성향으로 인해서 자녀가 겪는 여러 모습들은 부모 역시 어린 시절에 경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자녀의 모습이 또래와 다르더라도 부모 눈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과거 저는 또래집단과 조금 다른 독특한 모습과 언행을 보였습니다. 남들의 주목을 받거나 선생에게 지적을 받을 때면, 아버지께서는 대체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지난 태도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본인에게 내재된 ADHD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겁니다. 하지만 ADHD를 진단받고 부모가 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양육방식을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가치관들로 인해 저는 성인이 되어 ADHD를 진단받기 전까지 수많은 확실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실패한 삶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정신건강의학과 내원과 ADHD진단’이라는 특수한 경험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지난 날 아버지께서 저에게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말씀하셨던 것은 부모님의 삶 자체가 고단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퇴근 후 ADHD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가 되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일과 후에, 아이에게 관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하거나 훈육을 뒤로 미루고 싶은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이런 모습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ADHD부모들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ADHD인은 당장 자신이 편한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흐름과 결과를 스스로 논리적인 사고 과정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제가 ADHD를 진단받지 않았고 ADHD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아마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쳤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ADHD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가 자라온 환경보다 더 나은 양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줄 생각입니다.


♨ ADHD부모를 위한 육아 지침


☞ "내가 (또는 내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내린 결론이라 할지라도 전임자(또는 선배)와 동료들(또는 동기들) 등 모두가 하지 않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ADHD 관련 지식을 얻는 것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속에 숨겨진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영어 선생님이 무섭다며 영어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때, 선생님을 바꾸는 것은 쉬운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선생님을 바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훗날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예전에는 됐는데 왜 이번에는 안 되는건데?”하며 따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 상황에 대한 접근과 해결에 있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어릴 때 일이라 기억도 못 할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쉽게 해결하자"

아이가 어릴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억의 유무가 아니라 경험의 유무입니다. 만 4세 때의 경험은 만 5세에, 만 5세 때의 경험은 만 6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는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 위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ADHD부모님께 드리는 짧은 응원

: 다들 아시겠지만, ADHD부모가 자녀의 ADHD성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ADHD부모가 ADHD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일반적인 가족에 비해 분명 더 힘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저 역시 ADHD아빠로서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는 등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아이의 ADHD성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건, 바로 ADHD부모입니다. 우리가 자녀의 고민을 외면한다면, 누가 해결해줄까요? 


평소 아이가 잘 해낸 일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즉시 칭찬해주세요. 부모 눈엔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이라도 어려워한다면, 진심을 담아서 격려해줘야 합니다. 규칙을 세우고 가르칠 때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규칙을 어길 땐 짧고 단호하지만 따듯한 태도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훈육이 끝나면 사랑을 담아 포옹하고 아이의 마음을 반드시 보듬어주세요. 아이의 마음을 위해 늘 이렇게 노력한다면, ADHD인의 약점인 자존감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ADHD인의 양육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느라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지 마세요. ADHD와 함께 살아온 여러분이라면 ADHD에는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아실 겁니다. 열정, 창의성, 유머, 회복 탄력성 등 긍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애써봅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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