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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an 06. 2024

살피재를 넘으며

현대식 양아치들

 내가 사는 엣지 오브 서울은 비록 지금은 서울의 일부지만 오래 전엔 수목이 우거진 반쯤 무주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치안력이 닿지 않으니 도적이나 산짐승이 자주 출몰했다. 해서 위험을 만나지 않도록 살펴가라는 뜻의 살피고개, 다른말로 살피재가 나 사는 곳 근방 봉천고개의 옛이름이다.


 신림선이 뚫리기 전까진 외출할 때마다 지나다니던 곳이다. 비록 지금은 아파트에 상가가 늘어서서 우거진 수목은 온데간데 없지만, 버스를 타고 살피재를 넘다보면 그 옛날의 도적떼들이 오늘날 다소 변형된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사설 구급차다.


 나도 아비를 입원시키기 위해 몇 번 사설 구급차를 타본 적이 있다. 늘 차가 넘쳐나는 서울에서 최대한 많은 건수를 소화하기 위해 그들은 고막이 손상될 만큼 크게 싸이렌을 틀었고, 곡예 운전은 기본에 길을 안 비켜주는 앞차에 대고 확성기로 비키라 소리치기도 했다. 아비는 딱히 급한 환자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서 나로선 나쁠 게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양아치 짓거리로 조금이나마 이득을 보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혐오스러웠다. 비록 떼인 돈 받아주는 사람처럼 생긴 구급대원에게 별다른 항의는 못 했지만.


 응급 의료의 사각을 커버하며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그들의 공로와 별개로, 일부의 사설 구급차 운전자들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개새끼라고 판단한다. 단순히 모두의 출근길을 소란스럽게 하고 교통 흐름을 저해하는 1차적 피해보다, 사람들의 구급차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만 하는 신뢰와 배려를 저해하는 2차적 피해가 훨씬 크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응급환자를 싣고 가다 접촉 사고를 낸 구급차를 가로막고 수리비를 요구했다는 어느 운전자는 비판 받는 것이 마땅하다.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하거나 그런 법령이 없다면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구급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신뢰를 깎아먹고 있는, 이 나라의 사회적 신뢰도를 침식시키고 있는 사설 구급차에 대한 논의를 제껴두고 개개인의 시민의식 결여만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마치 수탈과 치부에 용이한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부패 관리를 벌하는 대신 드물게 나타나는 청백리를 칭송하며 부패를 단순한 개개인의 일탈로 여기도록 했던, 봉천고개가 살피재였던 시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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