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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Mar 05. 2024

K-N word

여전히 안 된다

 이래서 조선년은 안 돼. 큰이모가 두 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자주 입에 담는 말이다. 조선년이 안 된다면 조선놈은 되는 건지, 일본년이나 불란서년은 어떨런지, 애초에 뭐가 되고 뭐가 안 된다는 건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그 때마다 머릿속엔 수십 년 전 아직 젊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억 속 어머니는 옛 상도동 큰이모네 마당에 서 있다. 한 손엔 여행가방을, 다른 한 손엔 씻어놓은 자두처럼 앙큼한 양뺨이 수십 년 후에도 변함없을 매력을 암시하는 외동아들의 손목을 잡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김서방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이모의 결의에 찬 선언에 고개를 끄덕인지 십분도 되지 않은 참이다. 나오지 말라고 했잖냐는 이모의 호통과 마당에 묶인 똥개 '마돈나' 짖는 소리가 뒤엉켜 달동네의 낮은 하늘을 울린다.


 초췌함을 가장한 얼굴의 아버지는 당장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끌고 갈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마치 어머니의 등장조차 깨닫지 못한 듯, 그대로 흙바닥에 꿇어 앉은 자세와 침통한 표정만 유지하고 있다. 마침내 먼저 다가간 어머니가 밥은 먹었냐고 물어올 때까지.


 부부와 그 아들은 마왕의 성에 갇혀있던 공주와, 그녀를 구해낸 용사와, 그의 시중을 드는 종자와 같은 모습으로 상도동 달동네를 내려간다. 이모가 복수를 다짐하는 마왕과 같은 모습으로 혼잣말처럼, 그러나 쩌렁쩌렁하게 외친다. 저 미친년! 이래서 조선년은 안 돼!


 택시를 잡으려는 아버지를 뜯어말려 버스에 탄 어머니는 내릴 때 쯤 입을 비죽이며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들은 것은 어머니 무릎에 앉아가던 나 뿐이었을 것이다. 지는 조선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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