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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pr 30. 2024

쇄편8

세입자의 서러움

 싱크대에 물이 역류했다. 나는 역류에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오폐수의 역류는 얼핏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 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어떨 땐 사람이 죽을 결심의 마지막 원인이기도 하다. 주인집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주인은 전문가를 부르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돈을 아끼려고, 그러니까 전문가가 아닌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려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주인은 마지막 수단으로 물이 역류하는 틈을 청테이프로 꽁꽁 감았다. 난 부지불식간에 피식 웃고 말았다. 주인은 그게 기분이 나쁜듯 했다. 왜 웃어요? 아니, 그렇게 틀어막아서 해결될 문제겠습니까?


 해결됐다. 물 내려가는 소음이 다소 커진 것 외에는 이후 며칠이 지나도 문제없이 작동했다. 난 머쓱했지만 하여간 나는 나의 권한을 행사했고 집주인은 자신의 의무를 행했으니 딱히 미안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의외의 말을 꺼냈다. 303호 총각 계약기간이 얼마나 남았죠? 남기는커녕 넘은지 반년이 됐다. 하지만 별 말이 없었다면 자동 연장 아닌가? 주인은 연달아서 혼잣말인듯 그 때 코로나라서 싸게 내놨던 거에요, 하더니 날 보며 씨-익 쪼개는 것이다.


 - 이 씨방새가 나를 협박해? 따지고 보면 너도 이 세상의 세입자잖아 이 새끼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뒷통수를 긁으며 바보처럼 헤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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