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편 17

메모장 털기 4

by 김바롬

- 진 종일을 마음속으로 잔소리쟁이 모부장 욕하는재미로 버틴다. 물론 퇴근할 때는 안한다. 일터의 부정적 감정을 집까지 가져가고 싶지 않아서... 는 아니고 방향이 같은 부장이 집 앞까지 태워주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을 절반이상 줄여주신 은혜에 감읍하는 마음을 담뿍 담아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집에 돌아와 작업을 하다가 종종 떠오르는 오늘의 부당한 잔소리를 상기하며 욕을한다. 집에서는 육성으로 한다.


- 심지어 지금보다도 상큼했던 시절 초밥집에서 일하던 시기 일이다. 유독 바빴던 어느날 손님상에 나갈 락교를 담고 있는대 사장이 벌컥 화를 냈다. 뭐하냐, 바빠 죽겠는데 그걸 언제 국자로 뜨고 있어? 손으로 해, 손으로! 비록 내 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건데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사장은 워낙 성질머리가 드러웠으므로 별 수 없이 락교를 손으로 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참 동료 직원이 그 꼴을 보고 화들짝 놀라 날 꾸짖었다. 아니, 지금 그걸 손으로 하면 어떡해요?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찌 부역자들과 비슷한 결의 변명을 중얼거렸지만 동료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그걸 손으로 하면... 피부 상하잖아요!


그 뒤로 나는 아무리 바빠도, 사장이 염병을 해도, 반드시 국자를 사용해 락교를 담았다.


피부 상할까봐.


- 듣기로는 인류 문명의 발원지 근처 아나톨리아 반도에 괴벨리스 테페라는 건축물이 있다고 한다. 약 1만 2천년 전 신석기 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흔히 고대 건축물의 대명사로 일컫는 피라미드 건축과 현대 시대의 차이보다 괴벨리스 테베와 피라미드의 시대 차이가 훨씬 더 크다. 해당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유튜브 등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내가 주목한 것은 종교적 건축물로 보이는 괴벨리스 테베가 만들어진 시기가 최초의 농경보다 수천 년 앞서 있다는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고 나서 규모가 확장된 모듬살이를 지탱내기 위해 종교가 발생했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결과다. 종교가 발생하고 규모가 확장된 모듬살이를 지탱하기 위해 농사가 발생한 것이다. 오랫동안 버리지 않은 철없는 믿음이 증명된 듯 하여 뿌듯한 마음이다. 먹고살아야 꿈꿀 수 있는게 아니다. 꿈꿔야 먹고살 수 있다.


-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놀라겠지만 어릴적 나는 입이 짧았다. 동년배보다 왜소해서 죽은 아버지는 내 초등학교 입학때 등에 진 책가방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하도 밥을 안 먹으니까 어머니는 어느날 달력을 가져다가 날짜 아래에 그날 먹고 싶은 걸 적으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어린 나는 아직 상상력이 부족해서 잉걸불에 태운 도토리 국수 같은 건 생각해내지 못했다. 아마 짜장밥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소세지 뭐 기껏해야 이런 거나 적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니 급격히 살이 찌고 덩치가 커졌다. 이후 스무살 쯤엔 정상체중을 유지하다 술맛을 알개 된 후로 또 급격히 쪘다. 요샌 또 다이어트 중이다. 달력에 먹고 싶은 걸 적었다 이를 악물며 지우곤 한다.


- 난 지금 또 염병 떠는 홍부장을 들이 받고 나와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한시간을 나와 있었는데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이대로 짤리는 걸까?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런 상황을 대비하면 담배부터 아껴야 할진데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쇄편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