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편 - 20

왜 메모가 줄지 않을까

by 김바롬

- 읽혀야 글이다. 읽히는 건 때론 쓰여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안 읽히면 안 쓴 거랑 다를게 없으니까. 물론 나는 무인도에서도 글을 쓰겠지만 그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읽히게 될 기대를 하는 것일 테다. 뭐 지금도 무인도에서 쓰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 밤마다 모닥불을 피워 광막한 수평선 너머로 신호를 보낸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여기 있다.


- 엄마가 동생 부부가 싸운 얘기를 해줬다. 한쪽은 최근 있었던 정권교채에 감동하여 눈물을 펑펑 쏟았고 다른 한쪽은 무슨 그런 걸로 울기까지 하냐고 면박을 준 끝에 격한 언쟁으로 비화된 모양이다. 딱해서 쓰게 웃었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다.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게는 각자의 가정의 평화가 훨씬 더 중하다. 설령 평소의 정치적 신념을 양보하는 한이 있어도. 수신재가도 안되는데 무슨 놈의 언감생심 치국평천하란 말인가.


- 설령 먹고자고싸는 모든 시간까지 활용해 1초도 쉬지 않고 배우고 익힌다 할지라도 여전히 세상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처음엔 예의 생각이 세상의 광막한 불가지성에 대한 절망을 주었는데, 요새는 오히려 힘이 난다. 물론 성숙함의 결과는 아니다. 굳이 말로하자면, 누구를 만나도 너나 나나 정답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잖아, 하는 마음이 든달까?


- 주사위를 굴렸는데 100연속 6이 나왔다. 101번째에서 6이 나올 확률은? 독립 시행이니까 여전히 6분의 1이라는 것이 출제 의도겠지. 그러나 내가 보기엔 어리석은 생각이다. 100연속 6이라면 이미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주사위에 납을 넣거나 그 이상의 음험한 수작을 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출제자는 해당 주사위에 다른이의 의도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가정'하라 요구하겠지만, 세상에, 주사위가 100번 연속 같은 수가 나왔는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세상사에 의도가 들어있지 않은 일이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물론 그 모든 의도를 파악하려는 건 정신병의 첩경이겠으나, 무언가 의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 것은 비루함의 첩경일 것이다.


- 내가 공익으로 있던 복지관은 노인 복지관이었고 길 건너편에 아동 복지관이 있었다. 복지사들의 노고야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으나 노인 복지관 복지사의 우울증 발병율이 훨씬 높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바로 미래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인에겐 늘 오늘이 얼마 남지 않은 생애 중 가장 건강한 날일테니까. 해서 복지는 현재를 지탱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그리게 해주는 것이어야 옳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느 연극의 대사처럼, 희망은 혁명적으로 많아야 한다. 어지간한 수준의 희망으로는 도무지 삶이란걸 버텨낼 재간이 없으니까.


- 실은 세상만사가 기분 문제다. 99프로가 아니라 100프로 그렇다. 거 왜, 소크라테스도 결국 기분 문제로 죽지 않았는가. 해서 난 여건이 되는 한 되도록 남의 기분을 좋게는 못해도 나쁘게는 하지 않으며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허나 가끔은 거대한 의문애 사로 잡히곤 한다. 그런 내 기분은 대체 누가 신경 써주지?


- 언젠가 읽었던 글에서 말하길, 아마도 고려 이자겸의 난 때였던거 같은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왕의 앞에 반란군이 창칼을 들고 당도하였는데 그곳엔 오로지 왕과 반란군, 그리고 사관만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사관이 있었으니 당시의 긴급한 싱황을 나도 알고 있게 된 거겠지만 깊이 생각할 수록 기묘한 일이다. 왕이 위기에 처했으니 하급 문관일 사관은 말할 것도 없을터. 충성심이 부족했다면 진작에 도망치는게 합리적이고 충성심이 충분했다면 한가하게 뭔가 쓰는 대신 벼루라도 집어던져 반란군의 어그로를 끄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컨대 그가 끝까지 남아 쓰게 했던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사명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종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종이 위에서 나는 쓰겠다고.


나 원 별, 미친놈 같으니.


- 삶이 어느 작가가 쓰는 이야기 속의 어느 작가가 쓰는 이야기 속의 어느 작가가 쓰는... 뭐 그렇게 끝없이 이어진 가장 안쪽의 것이 아닐까 상상했다. 내 서사의 완성도가 썩 높지 않은 이유도 알만하다. 억울해서, 나도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내 삶이 가장 안쪽 마지막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 할 때는 퇴근 후 할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퇴근 후엔 내일 출근할 걱정을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일 할 때의 감, 작업할 때의 감을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알면 뭐해. 쉽지 않은 일이다.


- 회식하는데 홍부장이 날 붙잡고 늘어졌다. 삼촌이기도 한 사장이 제지한다. 그만 얘기하고 이리와. 관둘 놈이면 벌써 관뒀어. 옳지만 그른 말이다. 난 관둘놈이 맞고, 아직 관두지 않았다.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을 몰라주는 사람을 죽여버릴 수도 있는 걸까?


- 어느 순간부터 전화벨 소리에 설레지 않는다. 또, 여론조사겠구나 싶을 뿐이다.


- 매주 금요일 퇴근할 때마다 다짐한다. 로또되면 다음주에 안 온다. 물론 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출근한다. 로또 따위 산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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