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편 21

메모장을 털어요

by 김바롬

- 호주 농장 숙소 총무 노릇을 할 때 동료였던 타케가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출신이었고, 호주에서 완전히 자리 잡아 아직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올 계획이었다. 허나 답답하게도 그의 부모는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 고집을 부린다고 했다. 난 내가 호주에 오기 전 느꼈던 두려움에 대해 말하며 너의 부모님 또한 그런 두려움이 있을 거라고, 설득하기 전에 우선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타케는 못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뭐 사실 나도 당시 끝내 이혼은 못하겠다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다를 것도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랫동안 계속된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존경할만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비난을 멈추고 몇 달 후 어머니는 이혼했다. 타케의 가족들도 그랬길 바란다.


- 세계화가 뭔지. 왜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호르무즈 해협에 긴장감이 도는 것만으로도 치킨 값이 오르는지 알 수가 없다. 근데 또 옛시절처럼 바나나를 서왕모의 복숭아 못지 않은 환상의 과일로 여겨야 한다면 그건 또 싫다.


- 언젠가 옛직장 동료가 말했다. 세상에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할 수 없는 건 없어요. 매우 옳은 말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굳이 사족을 달고 싶다. 자칫, 괜찮으면 안 되는 것이 괜찮아 질 수도 있다고.


- 모든 것은 기억이 되고 모든 기억은 사라지니까. 이 뒤에는 무엇이 붙어야 할까? 오랫동안 죽겠다 혹은 죽어도 상관 없다였는데, 이젠 그래서 살겠다로 바꾸기로 했다. 같은 이유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오묘한 인간사다.


- 간신히 창작이 소비가 아닌 생산 활동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뭔가 쓰는 건 돈을 쓰는 행위였는데 이젠 코딱지만큼이나마 돈을 버는 행위가 됐다. 물론 아직도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가 한몸이었던 시절처럼 까마득하기만 하다. 1년에 3센티 가량 멀어진다던가?


- 삼촌이기도한 사장이 내게 역정을 낸다. 넌 임마 뭔 그렇게 담배를 자주 피러 다녀? 담배 안 피우는 사람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임마?! 난 딱히 당황하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내게 하는 말이 아님을 아니까. 나랑 눈이 마주친 조이사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는다. 너 땜에 내가 욕먹잖아 시댕아.


- 전 회사 팀장님을 만났다. 족보 세트를 먹고 헤어지는 길, 너무 아쉬워서 말했다. 결국 드리고 싶은 말의 3할 밖에 못했네요. 팀장은 흠칫했다. 난 오늘 거의 한 마디도 못했는데? 그러니까 3할이나마 했죠.


- 싫어하는 음식 중 하나가 죽이다. 식감도 그렇고 맛도 너무 약하다. 그런 내가 꼼짝없이 하루 세 끼 흰죽만 먹어야 했던 시기가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선홍열이랑 장염이랑 또 뭐였더라 하여간 많은 질병들이 겹쳐 방학식날 저녁 응급실에 가서 개학식 전날 퇴원한 건 지금도 상처로 남아있다. 일반식을 먹지 못하는 날 위해 어머니는 매일 흰 죽을 쑤어 날 먹였다. 죽만 먹이면 오엑오엑 구역질 하는 시늉마저 하니 뭐 이런 되바라진 놈이 다 있냐고 투덜거리며 장조림 반찬도 해줬다. 개학식 전날 오랜만에 들어간 집 안에는 일본 공항에 처음 내릴때 나는 냄새의 수십배에 달하는 간장냄새가 진동했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매일매일 죽을 쑤고 장조림을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리며 방금 통화로 최순실 만두 주문해 달라는 요청에 짜증을 냈던 걸 반성했다. 엄마, 최순실이 아니라 이순실 만두야! 그깟 만두 최순실이면 어떻고 이순실이면 어떻단 말인가. 여담이지만 어머니는 딱히 정치적 신념이랄 것도 없다. 이번 대선에 누굴 찍을까 하기에 아무나 찍으라고, 다만 이사람을 찍으면 아들이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금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만 기억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띵.


- 어지간하면 딱보니까 쎄하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설령 그 쎄함이 맞아떨어진다 할지라도 이전에 가졌던 선입견이 합리화 될 수는 없다. 의처증을 가진 이의 배우자가 실제로 바람을 피웠다 해도 의처증이란 병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 나의 지금 인생이 내가 다다를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최선이었음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인생이 특별하지 않을리 없다는 착각은 버릴까 말까 고민 중이다.


- 문득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 떠오른다. 직전에 치킨에 올라갔던 파채를 조금 덜 먹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예 왕창 먹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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