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아닌 게 어디있니
2주 전 새로운 '껀수', 즉 돈이 되는 일을 받았다. 올 겨울은 딱히 따뜻하진 않을지언정 적어도 얼어죽진 않을 모양이다.
외국소설의 1차 기계 번역본을 자연스럽게 윤문하는 작업이다. 2주 동안 내 글에도 잘 안 쏟는 열정을 쏟아붓다 정신을 차려보니, 정작 내 글을 쓴 지는 너무 오래 되었다.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외출해 스타벅스에 왔다. '받은 선물'란에 있는 마지막 기프티콘으로 허니자몽블랙티를 시켰다. 불교도에게 고기가 금지되는 것은 사실 독실한 불제자였던 당나라 모 황제의 영향이라고 한다. 원조 불교 또한 어지간하면 육식을 하지 말라 권장하긴 했지만, 보시로 받은 고기까기 거부하진 말라고 했단다. 해서 난 허니자몽블랙티를 보내준 이에게 거참, 차라리 아아 두개로 보내주지... 따위의 궁시렁거림은 하지 않기로 한다. 마시다보니 아주 나쁜 것 같지도 않다. 특히 한 번에 다 마시고 달그락거리는 빈잔을 보며 추가 주문을 해야하지 않을까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은 뜻밖에 장점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하는데 딱히 쓸게 없다.
남의 글 다듬는 작업 중에는 고전 명곡 캘리포니아 드림인을 자주 들었다. 캘리포니아는 근처도 가보지 않았는데 예의 곡을 들으면 늘 캘리포니아가 그립다. 예의 곡을 오에스티로 사용한 영화 중경산림을 봐도 그렇다. 홍콩은, 광저우 공항에 가봤으니 근처는 가봤다고 해야할까? 여튼 고작 그게 다인데도 홍콩이 그립다. 가끔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삶에도 노스텔지어를 느낀다.
그래도 간간히 사람을 만난다. 난 내가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왜이리 기운이 없냐고 묻는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콕 집어 '화술'이 떨어졌다는 지적이었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많은 난관들을 혓바닥으로 극복해온 나였다. 하필 내게 가장 중요한 무기가 퇴색됐다니 두려운 일이다. 이제는 비록 대중적으로 어필하긴 힘들지만 소수의 매니아층은 환장하는 얼굴을 믿고 살아야 하는 걸까?
스무 살의 어느 날, 그러니까 1, 2년 전의 일인데, 한 친구가 내게 너는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부럽다는 얘기를 했다. 난 다소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론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느끼기도 했다. 오늘 날, 나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외투를 입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하고, 예의 친구는 어디서 시설 관리를 하면서 연봉을 나의 서너 배를 받는다.
세상에 허송세월 아닌 것은 없다. 이런저런 허송세월이 모여 뜻밖에 의미를 빚어내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닐까? 생각을 발전시키는 와중, 쪼로로록. 허니자몽블랙티가 바닥났다. 이제 집에 가서 남의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