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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Dec 15. 2020

혈액순환엔 오메가쓰리

 수 년 전 만 해도 친구가 우울증 약 복용을 고백하면 난 더 할 수 없이 쿨하게 답하곤 했다. 거참, 그게 뭐라고 분위기를 잡아? 나도 엊그제 쌍화탕에 기침약 사먹었는데. 몸이 감기에 걸리면 병원가서 약 타먹듯이 마음이 감기에 걸리면 신경정신과에서 약 타먹는 거야. 이상할 거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수 년 후, 생애 처음으로 신경정신과에 내원한 내게 의사가 물었다. 왜 이제야 오셨어요? 꾸중이라기보단 부드러운 질책에 가까웠지만, 머쓱하게 뒷통수를 긁으며 진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약 먹기가 싫어서...




 다행히 나 같은 일반인 사이에서 널리 퍼진 흉흉한 소문은 사실이 아닌 모양이다. 띄엄띄엄이나마 2년 정도 약을 먹고 보니 오감과 통찰력을 마비 시킨다는 것, 중독성과 의존성 때문에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는 것, 의사들은 다 알면서도 약을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환자의 의존도를 높여간다는 것... 이제 보니 그런 건 요새 유행하는 반지성주의적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때 의사의 질책을 수십배로 부풀려 과거의 나를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다. 대체 왜 그제야 갔니? 진작에 가서 진작에 진료받고 진작에 처방 받아 약을 먹었으면 지금 쓰고 있는 형편없는 습작들은 10년 전 쯤 진작에 다 쓰고 지금은 좀 더 괜찮은 글을 쓰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약먹기가 두려웠던 과거의 나를 위한 변명도 있긴 하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거의 두들겨 맞듯이 쏟아지는 잠. 사고의 속도가 반박자씩 늦는 느낌. 무엇보다 싫은 것은 그 코딱지 만한 약으로 무언가가, 설령 좋은 방향이라고 해도 바뀐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어쩌면 내 일생을 괴롭혀왔던 우울과 고통은 내밀하고 섬세한 영혼에서 오는게 아니라 그저 육신에서 오는 것임을, 제아무리 잘난 척해도 나또한 잘 구성된 한 기의 생체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하는 게 못내 불쾌한 것이다.


 물론 우스운 말인 건 안다. 굳이 윗 글의 우울을 체증으로, 약을 활명수로 바꿔서 읽어보지 않아도 말이다.


 요새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약은 잘 먹지 않는다. 매일 챙겨먹는 건 비타민D 함유 오메가3와 사은품으로 함께 받은 밀크씨슬 뿐이다. 오메가3를 먹고 트림을 하면 노량진 수산시장 바닥을 혀로 핥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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