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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Dec 22. 2020

호빵 사먹으러 오세요

군고구마도 있어요

 영영 내 일은 아닐 줄 알았던 ‘시국’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건너건너 소개받은 주 15시간짜리 일로는 도무지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어 주말 일을 하나 더 구했다. 하필, 편의점이다.


 하필 또, 편의점이다.


 엄습하는 우울감을 한참의 심호흡과 명상으로 가라앉힌 후에야 놓쳤던 펜을 다시 바로 쥘 수 있을 지경이다. 올해 내내 끊어내려 안간힘을 썼던 지긋지긋한 운명의 끈의 탄성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자리에 돌아와버린 느낌이다.


 출근과 급여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자유인의 삶을 사는 것. 밥벌이에 쫓기는 대신 ‘일’을 하며 사는 것. 내게 주어진 시간을 보다 가치있는 것과 교환하는 삶은 오랜 꿈이었으나 그만큼 멀고 희미하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자리에서 우왕좌왕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일정량의 자유를 지불해야 한다는 패러독스가 아직도 이토록 낯설다.


 뭐, 별 수 있나. 나는 아직 좋은 작가일 수도 좋은 인간일 수도 없으니, 당분간은 주말마다 이곳 편의점에서 인간이기를 배우기로 한다. 누구라도 원하는 것이 되기 이전에 인간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남들 다 잠든 시간에 일하는 덕에 올해 첫눈이 오는 순간을 볼 수 있었던 건 뜻밖의 수확이다. 매장 앞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한동안 상념에 빠졌다. 저 내리는 눈 속을 누군가와 함께 걸었으면. 아무말 하지 않아도 마주잡은 두 손의 온기만으로 충분하다면. 간지럽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는 너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으면. 눈이 오니 편의점에 들러 호빵을 사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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