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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ug 18. 2022

마티네의 끝에서 - 히라노 게이치로

과거는 바꿀 수 있다

 19세기 말 불란서 자연주의 소설의 거장 에밀 졸라는 자신의 문학을 '과학'이라고 표현했다. 섬세하고 끈질긴 묘사와, 어딜가도 좌우대칭 뿐이라며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 불평했다는 영국 공주의 일화가 떠오르는 조형적 이야기 구조의 작위성은 그러나 내 취향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어서, 실은 세잔의 불알 친구 아니었더라면 별달리 관심가는 작가는 아니다.


 아마도 근대 불란서 문학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 또한 얼핏 그것과 닮아있다. 그러나 메스처럼 날카롭고 섬세하며 또 바위처럼 단단하고 무게감 있는 통찰은 인물의 피부와 근육과 혈관과 뼈를 들어내고, 이윽고 가장 주관적인 마음 깊은 곳의 핵심을 낱낱히 드러낸다.


 별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일말의 고뇌의 흔적도 호들갑도 없이, 혹은 그 자취를 완전히 지워내고,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마음의 먼지 쌓인 한 구석을 쿡, 하고 찌르는 탁월함에는 취향이고 지랄이고 기꺼운 마음으로 항복해 내 정서를 모두 내맡기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를 때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그의 문학적 성취는 이미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경지라는 생각이다. 상대성 이론을 이해 못하겠다 하는 사람은 날 포함하여 많지만, 그것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테니까.


 지금보다도 훨씬 못났던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그를 접했다. 그 후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적지 않은 작가들이 내 마음 속에서 빛을 발했지만, 으레 시간의 흐름과 함께 광채를 잃고 이젠 차갑게 식은 둔중한 광택으로 내게 줬던 가르침들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그러나 히라노 게이치로만은 그 광휘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도리어 더욱 밝아지는 느낌이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움과 숭고함. 쿨과 어썸. 자칫 부박해질 수 있는 절충이 아닌 완벽에 가까운 균형, 마치 선분의 중심이 아닌 선분을 밑변으로 한 정삼각형의 정점과도 같은 경지에 이른 그의 문학 앞에서는 어쩐지 살리에리의 마음도 들지않아,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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