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해2010년 작업 <소멸, 채집>/<온실>에서 처럼 죽었거나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무언의 조각들을 채집하는 것의 연장으로. 도시에 존재했었고 도시를 떠나서도 그 안에 존재하는 방치된 사물을 습관적으로 모았다. 민물이 종료되는 바다 연안에서 채집은 어원 그대로의 유목, 그 이상의 유목적 사물들로 나타난다. 모으고 기록하고 다시 분류하고 표기하며 도시의 기준에 적용시키기 위해 갈아낸 후에 쓸모 있는 사물로 변화시키곤 했다.
재개발로 부숴진 집의 골조 라는 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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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수히 많은 과정들에 있던 파편들을 하나둘씩 채집하면서 드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이 파편 한 조각의 유실이 자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아닐까 하는 우려도 어느 정도 포함한 채집이다. 사계절 내내 유목을 유목답게 하는 많은 자연의 힘이 직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크게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다. 태풍이 그러하고 지형이 그러하다. 또한 그 지형이 물리적 풍화에 취약한 생장을 발생시킨다면 더없이 유목이 발생하는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유목이 발견되는 장소는 물리적 영향을 끝으로 생화학적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으로써 고산지대 또는 바다, 해안가, 암석지대가 그러한데, 이는 자연생태계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만일 지구상 모든 사물들이 분해되어 버린다면, 고등생물의 등장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흔히 말하는 순환의 요인 또한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느 한편에서는 부패하며 사라지는가 하면, 또 다른 범위에서는 부패가 더 이상 일어나 지는 대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꾀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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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流木)은 한자어로서 물 위에 떠서 흘러 다니는 나무파편을 의미하지만 영문명칭 Driftwood 로서 의미와 비중은 더 크게 다루어지고 있다. 유목은 나무파편 자체만으로 다양한 연구가 가능한데, 단면에서 드러나는 환경연구에서부터 생성 시 간이 오래된 것은 연대측정을 통해 당시의 산림자원과 기상학적 조건들을 유추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담기도 한다. 기형적 형태는 해당되는 자연조건을 점검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며, 자연생태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데에도 자료로서의 특징을 나타낸다.
심미적 가치로는 생장 당시의 화학적 물리적 변화에 의한 형태를 활용한 공예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온전한 형태인 가공목재의 활용도를 높이 평가하는 해외보다 국내에서는 형질이 온전하지 않은 유목이라는 소재에 대해 기능적 형태적 분석적, 고고학적 가치를 나열한 사례는 드물게 나타난다. 때문에 유목은 해외에서의 연구가 활발하다.
애증의 유목펜 2016~2024펜은 현재를 기점으로 사용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도구이다. 인간이 사유하는 것을 문명의 기호는 가능하게 해 줬고 그것을 가시화시키는 동시에 기록적 형태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였다. 수많은 소비물품 중에서도 온전한 구조적 공학적 기술이 펜에 녹아들어 가 있음에도 우리는 기록된 종이의 낱장보다 더 효과적으로 펜을 소비해 낸다. 나는 펜으로 만들어지는 2차적 부산물에 주목했다.
문학과 예술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드로잉 하기의 실질적 매개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얼마나 많은 필요를 드러내고 있는지 기록하기 시작했고 생계의 근본적 해결방식이길 소망도 했다. 예술의 또는 이것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