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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3. 2020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을 읽으며

문화에세이

모모 녀석이 주인공이다


자기 앞의 생을 보면 주인공 모모 녀석의 소망은 우리가 기피하는 포주가 되는 것이다. 모모는 고결한 생의 구멍을 쾌락의 결과물처럼 나오게 된 아이다. 그리고 버려져 루자 아줌마를 만났다. 모모는 루자 아줌마에게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라딘과 라몽에게 모모 녀석 자신의 이야기와 루자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 낼 때 모모 녀석에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마치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 듯.

그렇게 모모 녀석에게 읽는 이의 감정이 이입된다. 모모는 생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 알아 버렸다. 집으로 들어와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로자 아줌마를 안아 줄 때 그 장면이, 그 모습이, 그 풍경이 초현실 그림을 보는 것처럼 꿈처럼 피어올랐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똥오줌을 싸긴 했지만 아줌만 아직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들만 똥오줌을 싸잖아요. 

수많은 소설의 미문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모 녀석은 이별이 두려웠고 무서운 아이였다. 모모는 소외된 자들에 속해 있었다. 버티는 것이 무엇인지, 버티는 게 어떤 것인지 아직은 모를 때의 모모. 아마도 생이란 그렇게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기 앞의 생’은 좋은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가지고 독서모임을 했었다. 올해 초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독서모임이 멈추었지만 독서모임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아주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독서모임을 하게 되면 소설에 관한 부분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읽고 난 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소설 밖의 문화적인 이야기는 질문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세세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썼고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통해서 삶과 죽음을 고찰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로맹 가리는 문단과 기자들에게 에밀 아자르를 사촌 동생이라 말하기도 했고, 감독으로 활동하며 영화도 두 편이나 찍고 외무 관료 출신으로 총영사관 총영사도 5년인가 했고 죽기 직전까지도 굉장히 멋에 신경을 썼던 괴짜이기도 했다.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그 덕분인지 자신보다 24살이나 어린 진 세버그를 아내로 맞아했다. 진 세버그가 반할 정도니 로맹 가리는 괴짜이기는 하나 참 멋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진 세버그는 아름답고 당시에 있을 수 없는 여성상을 지니고 있는 배우였다. 당시 여배우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자르고 아주 짧은 단발로 누벨바그 영화에 등장했다. 그리고 인기도 높았다.


진 세버그는 박애주의자였다. 그것도 심각하고 지독한 박애주의자. 로맹 가리와 결혼을 하고서도 집에 거지들을 가득 불러 같이 살았다. 맙소사였다. 로맹 가리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것 때문에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마찰이 심했던 걸로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 진 세버그가 자살로 죽고 몇 해 뒤에 로맹 가리도 자살을 했다. 진 세버그는 50년 대 말, 60년 대 초 영화계를 누벨바그로 '해체'시켜 버린 예술가 중의 한 명이다.


진 세버그와 행복한 한 때
누벨바그의 꽃


영화 속에서 큰 '해체'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이 85년도에 나온 ‘아메리칸 지골로'다. 상류 사회의 부인을 남편 몰래 만나면서 돈을 거머쥐는, 남창?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내용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젊었던, 신인 시절의 리처드 기어였다. 때마침 영화 의상을 맡고 있던 신입 디자이너였던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리처드 기어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아르마니의 의상을 입은 리처드 기어는 옷을 입었는데도 섹시함이 흐르는 기이한 현상을 영화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집에서 빵만 구워대던 주부들이 모두 일어나 극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장은 양복으로 불리며 고리 터분하고 권위주의적 남성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리처드 기어가 나타남으로 해서 수트(슈트)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고 영화 속 리처드 기어는 그야말로 모델의 일상을 훔쳐보는 착각이 들었다.

아메리칸 지골로의 리처드 기어
아르마니를 걸친 리처드 기어는 멋있다

리처드 기어는, 아르마니의 슈트를 걸친 초년병 시절의 리처드 기어는 멋져도 너무 멋진 것이다. 그의 움직임, 그의 손짓, 그의 눈빛 그 하나하나가 전부 아르마니의 니트와 바지, 슈트가 물아일체가 된 느낌이었다.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 역시 열광했다. 이후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남성의 상징처럼 되었다. 영화 속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브랜드가 많이 나오는데 지금 마시는 페리에의 병 모양도 전혀 변함없이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https://youtu.be/i4DI71X6PeM

Retrospective Soundtrack 아메리칸 지골로의 ost는 블론디의 데보라 헤리가 부른 콜미다. 데보라 헤리는 김아중의 마리아의 원조


프랑스에 진 세버그(미국 출생이지만)가 있었다면 미국에도 쇼트 컷으로 해체주의적인, 앤디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이 있었다. 당시 여성들이 경멸했던 아주 짧은, 보이시한 쇼트커트에 굉장히 크고 무거운 귀걸이와 목걸이, 눈 주위를 가득 매운 눈 화장, 검은 망사 스타키의 에디 세즈윅은 엔디 워홀과 함께 팩토리에서 기존 예술을 뒤집는 작업을 많이 했다. 에디 세즈윅은 엔디 워홀과 헤어져 보브 딜런과 잠시 만나기도 했지만 역시 짧은 생을 살다 마감하고 만다. 에디 세즈윅의 일대기를 영화한 ‘팩토리 걸’이 있고 살아 있는 에디 세즈윅으로 착각할 만큼 연기를 한 시에나 밀러가 주연이었다.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
에디는 앤디 워홀의 뮤즈였다


에디 세즈윅의 스타일은 에디 세즈윅이 죽었다고 해서 끝나지 않았다. 에디를 그대로 벤치마킹한 쇼가 각종 무대에서 펼쳐졌다. 샤넬이나 여타 디자인 회사의 런 어웨이에서 에디 세즈윅의 스타일을 여러 해 선 보였다. 에디 세즈윅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일본의 아무로 나미에였다. 노래도 잘 부르고 스타일은 정말 에디 세즈윅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로 나미에를 다시 벤치마킹해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굳혔던 가수가 이효리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잘 기획했다. 별 얘기 아니지만 에디 세즈윅과 쌍벽을 이루었던 트위기도 있었는데 트위기는 아직 살아있다. 트위기의 스타일 역시 아예 ‘트위기 룩'으로 지금까지 각종 쇼와 무대, 그리고 모델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웃음이 시원했던 에디 세즈윅
그녀의 스타일은 지금까지 핫한 아이템이 되고 있다
쇼트커트의 에디는 늘 행복해 보이지만


에디 세즈윅의 연인인 앤디 워홀이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이 있는 인물이다. 팝아트의 창시자이며 영화배우, 사진작가, 음반 제작자로 니코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그 앨범 표지, 바나나 하나로 넘어설 수 없는 앨범 표지를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물론 그 바나나는 앤디 워홀식으로 다양한 의미가 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 등 모두가 앤디 워홀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는 유명해질 거야,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https://youtu.be/r_4wKYrky4k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를 들어보자. 엔디와 에드, 그리고 니코의 아름다운 조화. 부조리에 저항하고 모더니즘에 해체를 불러일으키고 세상을 예술로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세계를 노래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환지통을 일으킬 만큼 손이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있는 그를 만날 것만 같다. 


그랬던 앤디 워홀의 친구가 백남준이었다. 백남준이 70년대 초 한국 땅에서 예술을, 그러니까 초현실적인 예술, 물질보다는 정신에 입각한 예술을 하려니 제약이 많았다. 마리가 길면 강제로 잘라버리고 자정이 되면 통행금지를 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70년대 한국의 예술가들, 가수들은 이름을 영어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배철수가 있던 '런 어웨이'는 '활주로'로 바뀌어서 앨범을 냈고, '블랙테트라'는 '열대어'로 바뀌었고, '바니걸스'는 '토끼소녀'가 되었다. 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남준은 제약과 간섭이 심한 한국에서 독일로 가버리고 만다. 독일에서 백남준은 플럭서스라는, 뭐랄까 문화적인 새마을운동 같은 것을 일으켜서 독일 예술계를 해체시켜 버린다. 발칵 뒤집어 놓은 거지. 플럭서스가 뭐냐? 나도 잘 모르지만 행위나 퍼포먼스로 금기나 기존의 틀에 충격을 주는 예술을 통틀어 말한다. 전위예술이라는 거 가끔 멍하게 보면 재미있고 좋다. 부수고 던지고 고함치고 소리 지르고, 우리도 일상에서 그럴 때가 있다. 다 때려 부수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할 수 없으니 전위예술가들이 대신해준다. 대리만족을 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나는 어쩌다 백남준의 아트 전에 빠지게 되어 몇 년을 많이도 가서 봤다. 70년대부터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 활동한 예술가가 오노 요코였다. 존 레넌과 결혼한 오노 요코 덕분에 존 레넌과 예술적 친구가 된 백남준은 존과 친구였던 앤디 워홀과도 어울려 모두가 함께 예술적 경계를 허물었다. 


정말 멋진 일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해체주의 작가들은 서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애당초 연결되어 있다가 후에 서로 친구가 된다. 이들이 서로 엮이게 되는 기초는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놓지 않고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 상상력이 떨어진 인간은 그저 나오는 대로 말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좀비와 다를 바 없다. 상상력은 그렇게 그들을 단단하게 연결시켜주었다.


백남준이 죽었을 때 뉴욕에서 장례식을 했는데 사회를 오노 요코가 봤다. 이 장례식장이 얼마나 멋지냐면 관속에 편안하게 누워있는 백남준의 배 위에, 장례식 장에 모인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매고 있는 넥타이를 가위로 갈라서 올려 달라고 오노 요코가 말을 하고 모두가 그렇게 했다. 잃은 사람을 슬퍼하기보다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함께 축하하는 기분이 들었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어 봐야지 한 것이 벌써 몇 년 전인데 언제 읽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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