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하루키가 좋아하던 노래들을 틀어놓고 있으니 노래들이 죽 나오면서 이제 곧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래들이 전부 따뜻한 기운을 전한다. 주로 겨울에 들었을 법한, 하루키가 겨울의 어딘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소설을 쓰다가 고개를 들어서 한 숨 쉴 때 차가워진 마음을 데워주는 노래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들이 온통 겨울의 냄새가 가득하다. 패치카가 떠오르고 창밖으로 차가운 바람이 우악스럽게 창으로 와서 부딪히거나 흰 눈이 비처럼 내리거나 뜨거운 커피에 위스키를 넣어서 마시면서 듣던 노래들을 듣고 있으니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일순 들었다. 아직은 여기에 선풍기를 틀어놨지만 토키 아사코의 마이 페이보릿 띵을 듣고 있으니 눈밭을 헤치며 빵집을 습격하던 남녀가 생각이 난다.
겨울은 보통 따뜻하다. 겨울이 춥기 때문에 옷을 더 껴입고 옆의 사람의 품에 파고들 수 있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기저기서 부부끼리는 그러는 게 아니야, 같은 소리가 들린다. 의리로 사는 거지, 키스요? 부부끼리 그런 건 좀, 같은 말들을 요즘은 재미있어하게 되었다. 예전의 부부는 안 그랬는데 요즘의 부부가 그렇다면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죽, 변함없이 늘 그렇게 해왔는데 요즘 좀 부각이 되는 것 같아,라고 하면 어쩐지 씁쓸하다.
운동을 해도 땀이 나지 않고 둔하게 되고 피부도 푸석해지는 겨울이 나는 별로인데 그런 신체적으로 표층적인 이유도 있지만 좀 더 심층적인 이유가 있다. 예전에 아버지가 병실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 나는 2년 동안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병실에서 보냈다. 그 이전에는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흥청망청까지는 아니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잔뜩 느끼는 겨울의 생활이었다. 주로 우리가 가는 곳은 연탄으로 고기를 구워대는 곳으로 가정집 같은 고깃집인데 방안에도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우리는 마치 가정집에서 파티를 즐기는 양 우쭐거리며 차가워 가는 겨울에 대항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병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의 일상은 반나절은 일을 하고 반나절은 모친과 교대를 하여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보냈다. 병실에 난 창으로 보이는 호텔의 불빛은 크리스마스 전날 클라이맥스를 이루었다. 반짝거리는 전구들이 찬란하고 너무 아름다워서 그대로 앉아서 한 시간 정도를 본 것 같았다. 병실의 왁자지껄한 환자들도-낮에는 죽는다 고통스러워하고, 기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와 간호사들과 환자가족의 다툼과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의 뒤섞임에 시끄럽던 환자들의 숨소리도 밤이 되면 잠으로 잦아들어 고요해진다.
병실의 불은 전부 꺼져있고 비상등만 곳곳에 희미하게 켜진 채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깊어만 간다. 병실에 앉아 아버지를 한 번 보고 창밖의, 호텔의 트리에서 반짝이는 전구를 봤다. 반짝이는 전구들은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숨소리가 희미해지면 나는 아버지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죽는 것보다 꼬집혔다는 것에 아파하는 아버지의 투정을 뒤로하고 겨울은 차곡차곡 자신이 입을 옷을 입는다.
하루키가 듣는 노래의 스펙트럼은 넓고 크다. 하지만 자국의 노래보다는 팝과 재즈 그리고 클래식을 좋아한다. 신기한 건 서핀 뮤직의 비치 보이스의 음악을 좋아했다. 비틀스보다 비치 보이스를 더 좋아했던 하루키는 팻 사운드 앨범에 대해서 자주 언급을 했다. 비치 보이스를 이끌었던 브라이언 윌슨은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 파라솔과 여자들에 대해서 노래를 부르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고 비틀스의 존 레넌을 보며(존 레넌은 보브 딜런의 노래를 듣고 심층적인 변화가 왔다. 보브 딜런의 모자를 쓰고 다니는 등 그의 노래, 그를 찬양했다. 그 후에 브라이언 윌슨의 팻 사운드 앨범을 듣고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은 충격을 받는다) 팻 사운드 앨범을 만들었다. 모두가 비웃었고 멤버들 역시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브라이언 윌슨은 환청으로 인한 정신병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팻 사운드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이 앨범은 지구에서 가장 잘 만든 앨범이 되었으며 2014년에 브라이언 윌슨의 팻 사운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만든 영화 ‘러브 앤 머시’가 있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팻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벽에 대항할 수 없던 알들이 벽에 부딪혀 피를 흘리지만 결국에는 벽에 금을 낸다. 그렇게 단단하고 굳건할 것 같았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시스템이 무너지며 상상력으로 뭉친 영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오른다. 영혼들이란 바로 벽에 부딪히면서 최고의 소리를 집어넣어 앨범을 만들려고 했던 브라이언 윌슨이 그렇고, 순문학에 집착하지 않았던 하루키가 그렇고, 금기를 건드려 예술을 하고자 했던 백남준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팻 사운드 앨범을 듣고 있으면 늘 놀랍지만 감동적이면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고 이런 앨범을 듣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하루키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경쾌하게 걸어가면 뒤를 이어 브라이언 윌슨이 손을 흔들며 뒤 따르고 그 뒤를 백남준이, 그리고 브라이언 윌슨과 경쟁을 했던 존 레넌이, 앤디 워홀이, 짐 모리슨이, 지미 핸드릭스가, 제네시 조플린이 퍼레이드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신해철을 좋아한다. 신해철에 대해서 한 번 글을 쓴 적도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729
신해철을 한 줄로 말한다면 '신해철은 팻 사운드다'. 어제 신해철에 대한 방송이 있었다. 한창 고스트 스테이션을 들을 때 마왕은 사람들의 고민을 듣기 시작했다. 방송에도 잠깐 나왔지만 한 청취자가 나는 열정이 너무 없다, 모두가 열정 가득한데 나는 왜 이런지 고민이다.라는 사연을 받았다. 이에 마왕은 이런 뉘앙스로 대답을 했다. 열정이란 타오르는 불꽃같아서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모두가 그렇게 열정 가득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세상은 폭발할지도 모른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집단, 즉 코뮌을 만든다 하여 그 집단이 정말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모였어도 그 속에서 리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지옥을 만드는 건 악마가 아니라 지옥을 약속한 이들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신해철, 마왕은 그런 뉘앙스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타오르는 불꽃을 가지고 있지만 내 속의 불은 미미하고 덜 빛난다 하여 그것이 열정이라 아니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열정이라는 건 타인이 결정하거나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걸 결정하는 것이다. 신해철이 죽기 직전 몸이 안 좋아서 음악 작업을 하면 안 되는데 부인에게 그랬다고 한다. 나 음악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신해철을 이렇게 음악으로, 살아있었던 '팻 사운드'가 될 수 있었던 기반은 역시 상상력이 아닌가 하다. 한국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음악, 외국에서 들어도 뭐지? 한국에 이런 굉장한 음악이 있단 말이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마왕의 에너지 원동력은 상상력이다.
놀라게 되는 일상이다. 갑자기 겨울의 노래를 듣고 아버지가 떠오르는 것도 놀랍고, 하루키가 여전히 구석진 곳에 앉아서 소설을 열렬하게 써내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마왕이 죽은 지가 벌써 6년 전이라는 것도 놀랍고 매일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상 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파고 들어온 것도 놀랍다.
그렇게 선풍기를 아직 틀어 놓은 채 겨울의 냄새를 노래를 통해 느끼고 있다. 손을 뻗어 꽉 쥐면 움켜쥘 것만 같은.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어쩌면 더 놀라게 되는 일상이 메일 눈 앞에 있다. 틀어 놓은 선풍기에서 힘겨운 늙은 개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선풍기도 이제 동면에 들어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세계는 그러한 반복과 연쇄를 통해 균형을 맞추어 또 한걸음 내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