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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4. 2020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

일상 에세이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


영화 속에서 왕왕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국밥러들이 기쁜 건 아무래도 국밥의 폭이 넓고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밥은 정말 다양하다. 국밥 하면 바로 떠오르는 돼지국밥부터 선지국밥, 콩나물국밥까지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침까지 꼴깍 넘어간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클리셰처럼 어떤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주인공과 상대방 앞에 국밥이 늘 놓여 있다. 한국인에게서 국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울 푸드다. 


조선시대가 배경이 되는 영화 속에서도 어김없이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대사가 있고 국밥을 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한 국밥이 있는데 옛날에는 무슨 국밥을 먹었을까. 조선시대에도 국밥의 종류는 다양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에 밥을 말아먹는 형태가 국밥이니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장군의 아들' 속에서도 김두환이 국밥을 먹는다. 맛있게도 퍼 먹는다. 영화 속에서 국밥을 먹는 장면은 언제나 맛있게 보인다. '독전'에서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김성령도 국밥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 개인적으로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장면도 영화 ‘궁합' 속에서 옹주 역의 심은경이 아이들에게 국밥을 사주는 장면이다. 꾀죄죄한 아이들은 국밥을 맛있게도 퍼 먹는다. 역시 무슨 국밥인지는 모른다. 

도대체 옛날의 시대에 먹었던 국밥은 어떤 국밥이었을까.

여러 국밥들 중에서 돼지 국밥은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만으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돼지머리를 계속 고아서 국물을 우려내는 국밥이 있다. 또 뼈로(때로는 고기와 함께) 우려내는 국밥이 있다. 그리고 살코기로만 우려내서 국밥을 마는 스타일이 있다. 대체로 돼지머리로 우려내는 방식이 가장 저렴하고 살코기로만 담백하게 우려내는 국물의 국밥은 좀 더 비싸다.

전통시장의 오래된 돼지국밥 집들은 돼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낸다. 셋 중에 가장 가격이 저렴하고 푸짐하게 고기를 담아준다. 그렇지만 꼬릿 한 특유의 잡내가 좀 난다. 나는 그게 좋아서 전통시장의 국밥집을 왕왕 찾는다. 무엇보다 허름한 분위기, 시간을 초월한 듯한- 멈춰 버린 시간 속에 와 있는 것 같은 벽지,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일관성 없는 티브이 소리나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의 잡음이 뒤섞여서 소리는 소리로서의 기능을 전혀 지니지 못하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것이 정겹다. 몇십 년 된 솥이 매일매일 육수를 무럭무럭 우려내다 보니 국밥집 안으로 들어가면 솥의 비릿한 내음도 미미하게 나는 게 참 좋다. 

정구지를 잔뜩 넣고 후후 불어먹다 보면 깔끔한 맛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시간을 이겨낸 투박한 맛은 분명하게 있다. 부속물이 가득 들어있다. 내장이나 간 같은 살코기보다는 부속물 위주의 국밥이라 언제나 푸짐하다. 그렇다고 해서 살코기 위주의 국밥보다 맛이 떨어지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긴 흐름을 보낸 단단한 맛. 비슷비슷한 돼지국밥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맛. 시장 상인들의 시름과 허기를 달래주던 맛. 고단함을 이겨내는 맛이라는 걸 드러낸다. 

영화 속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먹는 국밥도 이렇게 서민들이 막 앉아서 퍼먹는 장면들이 많은 것으로 살코기가 잔뜩 들어간 설렁탕 종류의 국밥은 아닌 것 같다. 시래기국밥이거나 콩나물 국밥 류처럼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국밥이었을 것이다. 배도 채우고 무엇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다른 국밥에 비해 오천 원이 넘지 않는 가격이라 저렴하다. 분명 영화 속, 조선시대의 서민들이 주모를 부르며 국밥을 말아 달라고 했을 때 나오는 국밥은 그런 종류의 국밥이지 싶다.

하지만 서민들도 고기가 들어간 국밥을 먹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창궐’을 보면 초반에 한 남자가 좀비로 변하기 전에 국밥 집에서 국밥을 퍼 먹으며 고기 들어간 국밥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으로 유추해보았을 때 내장국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요즘이야 돼지 부속물을 넣은 국밥이 살코기 국밥만큼의 대접을 받지만 예전에는 부속물은 그대로 버렸다. 오래전 미국 노예제도가 있었을 때에도 주인에게 닭의 살코기 요리가 올라가고 남은, 버리려고 한 부속물을 기름에 튀겨서 흑인들이 먹게 된 것이 치킨의 초반 형태다.

그런 점은 고려했을 때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고 했을 때 대체로 단일 국밥 메뉴가 있는 곳이고 때에 따라 부속물이 들어가는 내장 국밥을 팔지 않았을까. 주로 주모(주막, 일명 숫막에서 술을 파는 여주인)가 국밥을 말아주는 주막은 서민들이 오가는 곳으로 양반들은 거의 오지 않기에 비싼 국밥은 팔 수 없었다. 굳이 요즘으로 치자면 전통시장에서 열리는 장날의 한 편에서 파는 국밥 같은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영화 속에서도 이제부터는 “주모, 여기 내장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든가 “여기 선지 국밥 하나 주시오”처럼 세세하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변호인’에서 부추를 많이 넣어야 맛있다고 하는 장면이 좋은 것처럼 조선시대 국밥 장면도 디테일을 살리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돼지국밥에는 소면을 말아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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