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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7. 2020

하루키 신작 단편 '크림' 2

하루키 소설



2.

 나는 한큐선 기차에 몸을 싣고 버스를 타고 가파르고 굴곡진 도로를 오르고 올라 연주회장에 도착했다. 그 연주회장은 고베에 있는 여러 개의 산 중에서 하나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정상까지 올라가야 연주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만큼 연주회장은 인적이 드문 곳에 어이없지만 기세 좋게 세워져 있었다. 그런 곳에 연주회장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대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곳이라 그 지대에 맞게 지어진 적당한 규모의 연주회장이었다.


 이렇게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동네에 불편하게 자리 잡은 연주회장이 있을 거라고 나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온통 내가 모르는 것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걸 안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은 내가 알 때까지 기다려준다거나 또는 내가 알 수 있게 변한다거나 또는 나를 위해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나는 그 여자애에게 초대해준 감사의 표시로 뭐라도 들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차역 근처에 있는 꽃집에서 여러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준비했다. 다양한 꽃들이 꽃다발로 이루어져 연주회에 어울릴 것 같았다. 사실 꽃집 주인이 그렇게 말을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처지에 맞지 않게 큰돈을 썼다. 꽃다발을 구입하고 나오니 때마침 버스가 도착해서 올라탔다. 일요일 오후였던 그날은 약간 추웠다. 바람이라고는 전혀 불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차가운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은 잿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회색빛이 도는 헤링본 재킷 안에 파란색이 조금 가미된 얇은 무늬가 없는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재킷은 너무 새것이었고 그에 비해 가방은 오래되고 낡았다. 그런 차림과 손에 들린 화려한 꽃다발은 어떻게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렇게 한 껏 꾸민 채로 버스에 올라탔을 때 다른 승객들이 나를 계속 쳐다봤다. 그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얼굴에 와서 박혔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시선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에 붉게 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주 작은 도발에도 얼굴이 쉽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오른 홍조기는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다.


 도대체 나는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붉어진 볼을 식히며 나는 나에게 자문했다. 딱히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물가물한 그 여자애가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애의 피아노 연주를 꼭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용돈을 다 써가며 꽃다발을 사고 여기 이 산꼭대기까지 온 것일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끌림에 의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끌림에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음울한 11월 일요일 오후에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내가 우체통에 답장을 넣는 순간부터 잘못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승객들이 줄어들더니 내가 버스에서 하차할 때는 버스기사와 나밖에 없었다. 연주회장이 있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초대장에 있는 연주회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며 코너를 돌 때마다 항구가 시야에 잠시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감쪽같았다. 우중충한 하늘은 흐리멍덩한 컬러로 마치 회색 칠을 해 놓은 냄비 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았다. 항구에는 대기 중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크레인이 있었는데 꼭 어떤 꼴사납고 흉한 생명체가 바다에서 기어 나온 것처럼 보이는 안테나 같았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집들은 우아했고 고풍스러운 저택이었다. 차고에는 3,000cc 이상의 차 두 대가 주차를 할 수 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마호가니 무늬의 정문과 안과 밖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 큰 돌담이 있는 집들이었다. 진달래 울타리는 매일 정원사가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큰 개가 짖는 것처럼 소리가 들렸다. 세 번 정도 크게 짓고 나서 화난 주인에게 심하게 혼난 것처럼 갑자기 소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이내 주변은 적막해졌다.


 초대장에 그려진 간단한 지도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따라가는 동안 뭔가 불길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첫째로 길가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단 한 명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차 두 대가 지나가긴 했지만 올라오는 차량이 아니라 전부 내려가는 차들이었다. 산 정상이지만 그곳에서 연주회가 있다면 이것보다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동네 전체가 저 위의 빽빽한 구름이 소리를 다 집어삼킨 것처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고요했다.


[계속]


직역: 김가은

인스타그램  @kankim.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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