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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10. 2020

하루키 신작 단편 '크림' 5

하루키 소설


5.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시간이 오래 흘러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복잡한 시나리오를 짜서 계획하고 괴롭히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은 어째서 그런 일에 에네지를 쏟아부으려고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나락으로 떨어트려 불행한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도대체 사람의 속마음이란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일까. 단순히 나쁜 마음으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초대장은 제대로 된 엽서였다. 이렇게 엽서 하나를 만드는 것조차 꽤나 공을 들여야 했을 텐데 그렇게까지 사람이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여자애가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할 정도의 짓을 나는 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그 여자애에게 수치심을 느낄 만큼 잘못한 일은 전혀 없었다. 고작 연주를 할 때 건반을 잘못 두드린 것이 그렇게 그녀를 지금까지 화나게 한 것일까.


 온통 의문투성이었다. 질문은 가득하지만 답은 전혀 없는 것들 뿐이었다. 뉴스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인간 전반에 관한 것들을 돌아보면 가끔씩 고의가 아니어도 타인의 감정을 짓밟기도 하고, 자존심을 긁기도 하고, 기분을 상하게도 한다. 나는 나에게서 그러한 가능성을 추측해보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증오의 상황에 대해서 어쩌면 예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오해에 대한 것들을 나는 떠올리려 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 생각을 잡아당겨도 납득할만한 것들은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수확도 없이 이 감정의 미로를 방황하고 있을 마음이 삼하게 부는 강풍에 마구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순간 나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숨이 막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증상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나에게는 일어나곤 했다. 스트레스성 과호흡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몸이 느끼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무엇인가로 인해 당황하게 되면 목구멍이 꽉 조이고 그 때문에 폐로 충분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된다. 급물살에 쓸려 익사해버릴 것 같은 패닉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그대로 몸은 굳어버린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웅크리는 것뿐이다. 눈을 감고 몸이 다시 리듬을 찾을 때까지 천천히 기다린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로 시간을 들여 리듬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증상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멈추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느 시점에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증상도 멈추었다. 그 여자애와 피아노 연습을 하던 10대에는 그런 문제들로 나는 꽤 힘들었다.


 사라졌던 증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정자 옆 벤치에 앉아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숨을 못 쉴 정도의 이 막막함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오 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 십오 분이었을 수도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잠깐의 시간에 나는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다. 기묘한 패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거품 같기도 했고 거품이 원을 그리기도 한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패턴의 형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번쩍 하며 보이는 패턴의 개수를 샜다.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정상적인 심박수에 가까워지려 애쓰며 패턴을 수를 세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내 심장은 어떤 저항에 부딪혀 엄청난 속도로 요동쳤다. 갈비뼈 안에서 겁에 질린 쥐가 미친 듯이 경주를 하는 것 같았다.


 패턴의 수를 세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어떤 사람이 나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앞에서 누가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주 천천히 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조금 들어 올렸다. 심장은 아직도 세차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한 노인이 맞은편 벤치에 앉아서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노인의 나이를 눈으로 가늠할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어 버린 노인의 나이를 눈대중으로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노인은 다 비슷하게 보였다. 60대나 70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떻든 그들은 나이가 젊지 않다는 게 내가 말하고픈 전부다.


 노인은 푸른 끼가 도는 회색 울 카디건에 갈색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남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옷과 신발은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관리를 잘한 것 같았다. 꼼꼼한 성격인 것이다. 노인의 차림새에서 누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인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굵고 뻣뻣해 보였다. 귀 위의 머리숱이 목욕할 때 새들의 날개처럼 솟아 있었다. 돋보기 같은 안경은 쓰고 있지 않았다.  노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앞에 있었는지 몰랐지만 시간을 들여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노인이 나에게 “이보게 괜찮은가”라는 말을 건네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어떤 문제가 있어 보였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나는 그러했다. 앞의 벤치에 앉아서 나를 꼼짝없이 바라보는 노인을 봤을 때 제일 먼지 드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노인은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굳게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호박색 목재로 만들어진 지팡이처럼 보이는 우산의 단단한 손잡이를 꼭 잡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마치 우산의 손잡이에 의지하듯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노인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보였다. 나는 저 노인이 근처에 살고 있다고 추측했다. 노인은 혼자였고 노인의 옆에는 노인을 보호해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계속]


직역: 김가은

인스타그램  @kankim.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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