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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9. 2020

하루키 신작 단편 '크림' 4

하루키 소설


4.

 작은 공원에서 툭 튀어나온 정자에 올라서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항구가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수많은 컨테이너 선박들이 교각에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꼭대기에서 보면 철제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는 모습이 꼭 책상 위에 놔둔 동전이나 클립을 넣어두는 작은 통으로 보였다. 모든 풍경이 실제가 아니고 꾸민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돌처럼 정자에 가만히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겪은 이상한 경험에 대해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그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자연스러웠지만 일반적으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확성기를 통해 퍼지는 증폭된 소리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뚜렷한 일시정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고요한 바이칼 호수의 수면처럼 어떤 감정의 굴곡적인 선도 없이 매우 정확하게 전달했다. 소리는 무척 중요한 사실을 가능하면 아주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이 모든 게 나에게, 나에게만 보내는 개인적인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동안에는 전혀 하지 못할 생각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떤 이유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만큼 이미 지쳐있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그 목소리는 점차 커지면서 점점 알아듣기 쉬워졌다. 그 소리는 서두르지 않고 비탈길을 천천히 올라왔다. 느리게 움직이는 자동차 위에 달린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기독교 메시지를 방송하는 차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


 침착하고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을 겁니다. 이는 누구도 죽음이나 죽음 뒤의 심판에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죽고 나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죄로 강력하게 심판받을 겁니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메시지를 들었다. 복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기쁘지 않은 메시지였다. 그건 사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들으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곳에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데 이 산꼭대기 지역에 와서 전도사 활동을 하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저택에, 자동차도 여러 대 가지고 있고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풍족하게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 죄의 구원을 찾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구원을 외치는 기독교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렇지만 인간이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수입과 지위는 죄와 구원과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주님으로부터 그 죄를 사함 받을 것이라. 지옥불에서 벗어날 것이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를 믿는 자만이 죽음 뒤에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을지라.”


 확성기를 단 기독교 차량이 내가 앉은 벤치의 앞 도로에 나타나서 죽음 뒤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기다렸다. 지금 나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의 의미나 뜻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듣고 싶었다. 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명쾌한 소리를 나는 기다렸다. 차가 내가 앉은 벤치 앞으로 지나가면 더 확실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차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소리가 점점 조용해지더니 멀어졌다.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자동차는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오다가 내 쪽에서 멀어져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음에 틀림없었다. 어째서 곧장 이 도로로 오지 않는 것일까. 차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 여자애가 다 만들어 낸 사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게 되었다. 그 여자애는 나 같은 인간은 짐작도 할 수 없는 계락을 짜고 나에게 잘못된 정보를 보내서 일요일 오후에 외딴 산꼭대기로 나를 오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애와 피아노를 연습할 당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한 어떤 행동이 그 여자애로 하여금 지금 내가 처한 상황으로 빠지게 하는 앙금을 만들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꼭 집어 말할 수 있는 특별한 이유 없이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와 피아노 연습을 하는 동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분노를 계속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가 시간이 흐른 후 존재하지도 않는 연주회 초대장을 보내는 것으로 분풀이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고소하다며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먼 곳에서 그간의 분을 참지 못하고 이런 식의 일을 꾸며서 나를 속여 내 꼴이 우습고 꼴불견일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계속]


직역: 김가은

인스타그램  @kankim.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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