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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14. 2020

솟슨기둥

사진이야기

지난번, 사진가 노순택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올렸던 나의 ‘솟슨기둥’ 시리즈 사진이다. 지난번에 몇 장 올리지 못했는데 나머지 사진들을 올려본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585


사진 촬영은 한 달 정도 걸렸다. 한 달 내내 촬영한 건 아니고 흐린 날을 기다렸다가 반나절씩 담곤 했다. 사진을 촬영하는 건 딱히 힘든 건 없다. 뷰에 들어오면 셔터를 누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거리가 있어 걸어서 반나절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다리가 참 아프다. 계속 걸어 다니는 건 조깅을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그래서 좋은 사진을 담으려면 가벼운 카메라와 좋은 운동화가 필요하다.


카메라는 파나소닉 일명 렉삼이라고 불렸던 LX3로 촬영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오는 것과 지나간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새것과 헌것, 노인과 젊은이, 뭐 그런 것들에 관한 주제로 담은 사진들이다. 지금 이곳은 재개발로 인해 싹 다 없어졌다. 현실적으로 저곳에 살던 사람들은 보상금을 잔뜩 받고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며 이제 헌 곳도 새로운 건물로 쏙쏙 채워지고 있다. 혹시라도 신문사에서 연락이 오면 팔아먹어야지 하는 마음도 있다.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목욕탕, 오래된 세탁소, 오래된 미용실, 오래된 사택, 오래된 식육점 같은 곳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대부분 7,8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곳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성장했고 추억이 묻어 있었다. 조깅을 하다가도 저곳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슈퍼가 있는데 늘 쌍둥이가 등을 보이며 앉아서 숙제를 하거나 누워서 티브이를 보거나 했다. 쌍둥이는 초등생 꼬꼬마였다가 나중에는 중학생들이 되었다. 그녀들은 성장할수록 그곳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고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멋진 숙녀로 성장하여 애인과 함께 이곳을 지나치며 옛날을 추억하기도 할 것이다.


한동안, 거의 일 년 가까이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동 주민들이 개발에 반대하며 정책에 맞섰다. 집안에서 집안일만 하던 노년의 여인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그간 잊고 지냈던 정치에 대해서 소리를 높였다. 일 년 가까이 관할 소속 관계자들과의 줄다리기 끝에 주민들은 이주를 했고 오래된 아파트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저무는 해를 붙잡을 수는 없다. 해를 보내줘야 다시 다음 날 해를 맞이할 수 있다. 해는 하루가 지나면 차가워져 예열이 필요하다. 예열이 되어야 다음 날 쨍하게 떠올라 비타민D를 마구 뿌릴 수 있다.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울어봐야 바뀌는 건 없다. 매일 지속되는 나의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 그저 견디고 버티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불안이란 축소되는 법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확대만 되는 것 같다. 불안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같은 생각에 접어들면 더 큰 불안에 직면한다. 낭패인 것이다. 어느 날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 날은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또 불안하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증상처럼 불안도 같이 떠안고 죽을 때까지 가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것 같다. 떠난 누군가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손을 뻗는다고 해서, 비행기를 탄다고 해서 만날 수가 없다. 유난히 나는 여러 사람을 떠나보냈다. 그중에는 세상에 없는 말 ‘영원히’ 함께 하자는 사람도 있다. 그때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시신경이 조금 망가졌다. 시신경은 몇 퍼센트라도 망가지면 아주 불편하다. 한 번 망가진 시신경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97% 시신경이 남아있다가도 까딱 잘못하면 다음 날 50%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시신경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 나빠질 뿐이지 좋아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시신경이 망가진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매일 떠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눈을 떴을 때 방안이 전부 보이는 아침마다 휴우 같은 안도의 한숨을 매일 쉰다.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 역시 매일 불안으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녀석이었다. 내가 찍은 알 수 없는 사진을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그나마 나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속절없이 털어놓곤 했다. 부모에게도 자주 바뀌는 남자 친구에게도 자신의 불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나와 녀석을 이어준 건 그림이었다. 둘 다 그림을 좋아했고 마우스나 펜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 논하곤 했다.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고민을 말하면서 조금씩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기를 2년 가까이 되었다. 어느 날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메시지도 전화도 아무것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녀석은 이력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내몰리게 되면, 나 혼자라고 느끼게 되면 망설임이 없어진다. 분명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이제는 그림도 열심히 그려가면서 지낼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처음 만난 몇 명과 함께 모텔의 창문에 테이프를 두르고 공기도 통하지 않게 하고서는 술을 왕창 마시고 석가탄을 피웠다. 녀석은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함께 모텔의 방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모텔 주인의 신고로 119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나에게는 몹시 충격이었다. 웃고 있었기에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녀석은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 나는 뭔가 막지 못했다는 미안함보다는 녀석의 절실함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 마음이 컸다. 녀석은 나에게 미안했던지 이후로 나의 연락을 피하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때 받은 충격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그 뒤로 인관관계에 대한 불안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때의 충격은 고요한 충격이었다. 서서히 밀고 들어와서 단단하게 박히는 그런 충격이었다.


행복하면 행복이 깨질까 불안하고 불안하면 마음 깊이 불편하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치유인데 반해 나는 뭉쳐있던 불안을 퍼트려 놓는 작업의 일부분이다. 그러니 매일 사진을 찍고 적정량의 글을 쓰는 이런 모종의 일들이 주위에서 나를 의식적으로 방해하는 것들에서 방어막을 치는 행위에 해당한다. 불안을 분산시키는 일종의 삶의 훈련이다.


요즘은 그러지 않지만 불과 몇 해전까지만 해도 몇 개월 사진 작업을 마치면 카페나 작은 공간을 빌려 전시회를 가졌다. 돈을 탕진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지만 나는 꿋꿋했다. 내가 찍는 사진은 대중적이지 못해서 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체로 마니아적이었다. 3일 동안 하면 3일 내내 같은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관람하고 매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비슷함 속에서 또 다른 것들을 서로 집어내는 재미가 있다. 재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나의 사진을 보러 오는 사람들 역시 어딘가 불안을 깊게 가지고 있었다. 사진을 통해서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사진과 불안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넓게 보면 아이러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그렇기에 불안의 깊이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외모나 나이가 달라도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는 인간이 아이러니인 것이다.


한 선배는 나에게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서 전시를 해보라고 권했다. 아름다운 사진은 팔릴 가망성이 많으니까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 선배는 나를 모르기도 하지만 그런 사진에는 마음이 가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달려들 수 없다. 호기롭게 자신의 피드에 돈을 좇지 않고 돈에 얽매이지 않고 글을 쓴다고 말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말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글밖에 쓰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 고료를 받으며 밤낮 가리지 않고 벼랑 끝에서 절실하게 글을 쓰는 기성작가들의 글이 사랑을 받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러나 자본과는 무관하게 무서운 불안을 무섭지 않은 친구처럼 대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에는 이해를 바라고 싶다. 왜냐하면 매일 쓰니까.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쓰니까. 시간이 남으면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어떻든 쓰니까. 설령 바보 같고 멍청한 글이라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다들 이렇게 나한테 안 했을 거면서 내가 나니까 다들 일부러 나만 무시하고'라는 미쓰 홍당무의 미숙의 대사는 꼭 내가 잠결에 내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늘 맴맴 돈다.


나는 재미라고는 없는 인간이다. 내가 말하는 재미가 없다는 것은 나의 활동반경 내에서 움직이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늘 가던 곳에 가고 먹는 음식을 먹고 가는 편의점에만 간다. 재미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불만이 없다. 단단한 재미없는 것들이 불안을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어서 나의 삶에서 재미를 빼버렸다. 대신 소설을 쓰면서 재미를 찾게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 정말 미운 인간은 소설에 등장시켜 파리로 만들어 날개를 뜯어 버릴 수 있다. 나에게 헛소리를 하는 인간도 소설에 등장시켜 하루 종일 가려움증에 시달리게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혼자서 큭큭 하며 재미있어한다. 나의 불안이 겉으로 드러나는 법은 없다. 얼굴이나 말투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몇 년 동안 봤는데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같은 말을 많이 듣는데 힘들다고 드러내 놓고 소리 지르고 울어야 할까. 아무튼 인간은 불완전하고 아이러니다. 사진이나 글 속에는 나의 불안이 담겨있기도 하다. 분산된 불안, 조각난 불안이 조금씩 여러 사진과 글에 퍼져있다. 결국 그런 불안이 이런 시리즈로 남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솟슨기둥 시리즈



최근에 찍은 솟슨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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