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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5. 2020

노순택의 얄읏한 공

사진 이야기

열심히 사진 전시회를 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만약 그때 그렇게 두 발로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협소한 시각으로(카메라의 뷰) 세상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세계를 마음보다는 물질로 보려는 습성이 먼저 튀어나오는 그런 인간이 되었지도 모른다. 어떤, 이런 움직임이 있었기에 [하루키 말을 빌려] 밋밋한 달걀귀신의 상태에서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고, 자기 위치와 이름을 되찾고, 옷을 차려입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수염을 깎고, 아침을 먹고, 배변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각자 일상의 얼굴을 되찾아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의 사회활동을 보고, 그들의 작품을 눈으로 좇으며 제로에 가까운 존재에서 자기 위치와 이름과 역할을 가진 '보통 사람'으로 변신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연쇄를 통해 '변화'하되 '변함'없는 사람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노순택의 사진에 빠지게 된 건 순전히 ‘얄읏한 공’ 때문이었다. ‘얄읏한 공’은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그 자체로 등록이 되어 있다. 얄읏한 공은 여기서 보면 달처럼 보이고, 저기서 보면 풍선처럼 보이고, 멀리서 보면 골프공처럼 보인다. 얄읏한 공은 우리의 시선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얄읏한 공 시리즈는 노순택이 3년 동안 촬영한 기록이다. 대추리 주민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서 감시자의 눈처럼 보이는 미군의 레이돔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이 얄궂은 공처럼 생긴 돔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시시때때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정체를 숨기고 저 위에서 대추리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노순택은 한 장의 사진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이 강렬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보기 위해 이 주일에 두 번 멀리 있는 우향 미술관을 찾았다. 얄읏한 공 전시회를 보러 들어간 첫날 그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사진을 보고 딱 두발로 버티고 서서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진으로 전해져 오는 전율은 발끝까지 퍼져 있는 세포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사진은 대단했다. 아팠고 충격이었고 같은 형태가 여러 모양으로 바뀌는 역동적인 모습을 정적인 사진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전시회장에 갔던 첫날은 5시간 정도 머물러 있었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몇 바퀴 도는 동안 사진은 마치 영화처럼, 소설처럼 이야기를 건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노순택의 사진 속에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 웅크리고 있다. 사진은 사진 속에 나오는 사진 이전의 예술에 신세를 지고 있기에 사진은 잘 담아야 한다. 노순택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또다시 전시회장을 찾았다. 먼 거리를 달려, 입장료를 지불하고 첫째 날과 똑같은 사진을 처음부터 천천히 끝까지 꼼꼼하게 관람했다. 궁금하게 많아서 도슨트에게 질문을 몇 가지 했는데 도슨트를 하시는 분이 난처해하시며 오늘 처음 일을 하게 되었는데 질문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미술관 관장님을 불러 주셨다. 다행히 관장님은 사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작가와는 다른 시선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한두 시간 흘러 김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사진은 기록을 한다. 대추리 사건의 그 시간에 머물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나도 노순택의 ‘얄읏한 공’ 시리즈를 따라 찍어본다. 


제목: 솟슨기둥

한 달 동안 담았던 솟선기둥 시리즈.


옛것 중에서 지금은 사리진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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