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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7. 2020

수선 할아버지

사진 에세이


내가 사는 바닷가에는 오전에 나오면 이른 시간부터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시간을 죽여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노인의 등을 보는 것도 좋다. 노인의 등은 어떤 관념을 관통하고 오랜 세월을 견뎌낸 단단하면서 부드러움이 있다.

아파트 단지를 나올 때에도 노인정 앞의 벤치에는 늘 앉는 노인들이 앉아서 그 앞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설령 보는 그것이 미시적인 것이든 거시적인 것이든.

2층의 카페에 앉아서 밑의 도로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봐도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롭다. 그저 똑같은 모습의 바다일 뿐인데 바닷가 카페에 앉아서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금세 흐르고 만다. 아마도 노인들은 시간이 없음에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기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와는 반대로 내가 아는 노인 중에는 하루 종일 손을 움직여 일을 하는 노인이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애매한 추위를 등에 달고 길바닥에 앉아서 사람들의 구두를 닦는다. 매일 이른 오전에 나와서 주위에 떨어가며 구두를 받아서 잠깐 지나가는 해를 받을 때 광합성을 하는 듯 얼굴을 잠시 들었다가 다시 구두 닦는 일에 열중한다.

노인은 매일 비슷한 모습이다. 인사를 해도 감은 듯한 눈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움직일 뿐 큰 동작은 없다.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추운 날에 야외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노인은 쉬는 날도 없이 매일 나와서 구두를 닦는다. 구두를 닦는 일이 자신의 하나뿐인 소명인 것처럼. 갈라진 손으로 구두약은 들어가서 노인의 숨이 된다. 구두약은 노인의 손으로 흡수되어 노인의 피부가 된다.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 구두약은 이제 노인의 일부분이 된다.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노인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구두를 닦고 수선을 한다. 탁탁 슥슥. 아직은 추운 2월의 날에 노인의 손은 추위도 잊은 채 구두를 수선한다.



살아서 내는 용기는 보통 삶의 마지막 순간의 용기만큼 극적이진 않다. 하지만 승리와 비극의 장엄한 조합임엔 틀림없다 - 존 에프 케네디


사진을 만들어서 건네주려 갔을 땐 이미 구두수선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오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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