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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18. 2020

커피예찬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는 글이지만

음식 에세이

크레마의 풍미가 가득했던 라바짜의 커피

누구에게나 커피의 첫 경험은 있다. 첫 경험이라는 게 흡족하기보다는 뭔가 생각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기 마련인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시절에 작은 이모 댁에 가면 늘 어른들은 좋은 찻잔을 꺼내 커피를 마셨다. 그 냄새가 어찌나 좋은지 나도 한 번 마셔보고 싶었지만 어린이는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난의 칼바람이 부는 우리 집에 비해 모친의 동생이었던 작은 이모는 서울에서 큰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모부는 건축업을 해서 일찍부터 부의 축적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작은 이모의 두 딸은 어린 시절에는 뽀뽀뽀 같은 어린이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올 정도로 우리와는 삶의 격차가 컸다. 모친은 동생 앞에서 위축되거나 부끄러워할 법도 한데 어린 나의 기억에 그런 모습은 없었다. 단칸방에 살다가 서울의 작은 이모의 아파트에 가면 동생과 함께 사촌동생들과 여러 방을 뛰어다니곤 했다. 어른들은 모여 앉아 커피를 마셨다.


예쁜 커피 잔이 받침에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았고 커피의 향도 그동안 맡아보던 냄새에서 벗어난 좋은 냄새라서 커피라는 음료를 꼭 마셔보고 싶었다. 어른들은 커피 잔에 설탕과 프림을 넣어가며 홀짝홀짝 참도 맛있게 커피를 마셨다. 저 흙탕물 색의 커피가 무슨 맛이기에 저리도 맛있게도 마시는 것일까. 늘 궁금증 유발 대상이었다.


사실 언제 커피를 처음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요즘도 커피를 매일 하루에 한 잔씩 마시지는 않는다. 커피를 맛있게 마신 시기가 각각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2017년도 겨울인 것 같다. 원래는 몇 년 동안 가던 라바짜 카페가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사장님 덕분에 그곳은 여름 겨울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늘 평온하고 온화한 음악이 있다. 입으로 커피를 마시고 귀로는 음악을 마신다. 크지 않은 공간에 커피 마니아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추억도 많은 곳이었는데 없어지는 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얼마간 방황을 하다가 2017년에 바닷가의 또 한 군데를 찾게 되었다.


겨울의 조깅은 정말 힘들다. 옷도 두껍고 몸도 더 풀어야 하고 땀이 조금 났다 싶으면 금방 식어서 더 춥기 때문에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조깅을 하고 매일 커피를 마시러 들렀던 카페가 있었다. 차가운 바닷가의 칼바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단절된다. 그 기분이 좋다. 창을 사이에 두고 저곳은 바닷가의 혹독한 추위가 득실거리는데 여기는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커피를 홀짝일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이 좋다. 역시 거의 매일 들렀기 때문에 주인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적은 시와 그림을 사진으로 만들어서 한 장씩 창가에 붙여놓기 시작했는데 주인이 좀 많이 붙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늘 하나의 커피만 마시다가 여러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산미가 풍부한 커피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 맛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다. 어떤 날은 한 번에 두 잔씩 마시기도 했다. 호기롭게 에스프레소와 콜롬비아를 같이 마시기도 했고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를 같이 마시기도 했다. 그런 날은 카페인 때문인지 밤을 지내우는 날이기도 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카페인은 정말 잠이 달아나게 만들었다. 


2017년도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194

그해 가장 추운 날에도 카페를 찾았다. 뉴스에서 모스크바보다, 삿포르보다 더 추운 날이라고 했다. 그날이 기억이 나는 것은 조깅을 하는데 조깅코스에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그때 저기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오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이런 날씨에’라고 생각을 했다. 자전거가 스치고 지나가면서 헬멧과 마스크로 꽁꽁 가린 얼굴이 힐긋 나를 향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이런 날씨에 얼굴을 다 드러내 놓고 바람을 맞으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아팠다. 살갗이 아픈 날이라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얼어버린 바이칼 호수의 밑바닥 같은 공기가 얼굴을 아프게 할퀴었다. 얼굴이 10세 아이에게 여러 번 뺨을 후려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이 아픈 날이었다.


네온의 불빛도 전날과 다르고 사람들은 등을 한껏 구부리고 바닥을 보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었고 술집이나 치킨집에도 사람들이 없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그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부터 마신 술 탓에 한 명은 거리에 그대로 토하고 두 명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겨울은 변함없이 반복을 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것들은 늘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조깅을 끝내고 오뎅을 하나 사 먹고 바닷가의 카페로 들어가면 주인이 따뜻하게 맞이한다. 주인의 웃음은 캐서린 모리스를 닮았다. 그날 커피를 두 잔 마셨다. 카페에는 레이 찰스의 ‘조지아 온 마이 마인’이 흘렀고 나는 로미타샤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추위가 단절된 카페 안에서 따뜻함이 새어 나가지 않는 밖을 보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기분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미쳤는지도 모른다. 이런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몸을 추위에 차갑게 혹사시키고 길거리에 서서 오뎅을 사 먹고 카페로 들어와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걸 보면.


추위로 인해 차가워진 몸은 금방 데워진다. 그렇지만 마음의 틈을 벌리고 추위가 들어와 식어버리면 커피로도 마음은 복구가 어렵다. 창밖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레이 찰스가 부르는 ‘조지아 온 마이 마인’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따뜻하기만 했다. 레이 찰스의 음악은 언제나 영혼을 흔든다. 그는 7세에 이미 시력을 잃었지만 음악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스티비 원더처럼 음악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레이 찰스의 음악은 빛과 중력처럼 시간이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https://youtu.be/qIp9TwSEgFg

Ray Charles - Georgia On My Mind (Live)


이렇게 자주 가는 카페에서는 모두 커피 잔과 받침으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접시에 놓는 미묘한 소리가 마음에 든다. 누군가는 별나다고 하겠지만 그런 유별남이 커피에 관련한 소모품을 발전시킨다고 본다. 한 번은 주인이 직접 만든 브라우니를 먹어보라고 내어 줬다. 그날은 어쩐지 패배주의를 가득 안고 지친 몸으로 지친 내색 없이 커피를 마시러 들어왔던 날이다. 주인이 직접 만들었으니 맛이 어떤지 먹어보라 했다. 카페를 나설 때 주인은 수술을 하는 집도의처럼 양손을 천장으로 향하게 이렇게 들고 문 앞까지 배웅을 한다. 그날도 브라우니를 직접 만들고 있다가 내가 나갈 때 나를 배웅했다. 

브라우니는 뭔가 익숙한 맛이었다

브라우니를 내어줬을 때 사장님, 능력 자시군요.라는 말에 캐서린 모리스 같은 웃음을 보이고 먹어보라며 주방으로 갔다. 검은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 검은 브라우니의 부드러움에서 위로를 받고 검은 밤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브라우니의 부드러움은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몸으로 부드럽게 번진다. 창밖으로 검은 밤이 있고 창으로 비치는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브라우니를 맛본다. 백야가 있듯 '검은 낮'이 죽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짙은의 '백야'를 부르리. 오오오 지지 않으리.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을 프로들은 보여준다. 프로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떠들썩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게 그 자리를 지켜낸다. 아마도 여기 이곳은 소수의 프로들과 다수의 아마추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 세계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어딘가에 불온하게 붙어 부유하고 있는 표류물이다. 계절에 휩쓸리고 세월에 따라 이리저리, 프로라 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라고 아마추어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애매한 지점에 위태롭게 서있다. 그 속에서 맛보는 브라우니와 커피는 위로다. 괜찮아, 하는 것처럼. 나의 커피예찬은 떠들썩하지 않는 위로라고 생각한다. 



산미가 가득하다. 잔이 정말 예쁘다.
나의 글이 하나둘씩 카페의 액자에 붙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콜롬비아 커피는 마음에 든다

혀끝에 남아 그리움처럼 미미하게 감도는 산미

산미가 입 안에서 춤을 춘다

커피가 혀라는 세계에 노을처럼 그러데이션이 된다

어른 아이가 부르는 it’s rain처럼 콜롬비아가 쏟아지는 비처럼 퍼진다

콜롬비아를 담은 커피 잔마저도 커피 잔 답다

19세기 농장을 찾은 귀족이 된 것 마냥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커피 잔을 쟁반에 내려놓을 때

부딪치는 소리도 듣기 좋다

입안에 감돌던 커피가 목으로 전부 빠져나가고 나면 허전함마저 든다

한 잔을 다 마시고 나면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 저 너머에는 자줏빛 밭이 보이고 

침엽수가 몇 그루 밭 옆을 지키고 있고 눈이 녹지 않은 

저 먼 산꼭대기에는 운무와 구름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미 가을을 맞이한 나무와 여름의 끝자락을 놓칠 수 없는 나무가 

보이는 그곳에 앉아 조잘조잘 떠드는 새떼를 보며 

당신과 함께 콜롬비아를 한 잔 마시면 

콜롬비아는 커피 빵과 함께해도 좋다.
두 잔씩 마시기도 했다. 카페에는 그림도 많다. 
창에 시가 하나둘씩 붙어서 또 다른 느낌의 카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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