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Nov 14. 2020

길거리 오뎅의 힘

일상 에세이


오늘 지금은 날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따뜻하고 포근하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아니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3년 정도 그렇게 추운 겨울은 아니었다. 


기록된 날짜를 보니 2017년도 12월인 것 같다. 2017년 겨울은 아주 추웠다. 그때 뉴스에서는 러시아보다 더 춥다고 할 정도로 혹독했다. 내가 그해의 겨울을 잘 기억하는 것은 조깅을 할 때 그때는 아주 두꺼운 아디다스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다음 해부터 지금까지의 겨울은 그 정도의 추위가 아니라서 패딩 같은 것을 입고 달리지 않았다.

 

그날은 혹독한 그해의 겨울의 추위 중에 가장 추운 날이었다. 조깅을 하는 길목에 매일 나오는 귤 할아버지도 들어가고 없는 날이었다. 조깅코스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강변에서 먹이를 바라는 길고양이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렇게 추운 날이면 길고양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추위를 피할까.

이렇게 혹독한 날이지만 두꺼운 패딩을 입고 달리게 되면 팬티의 선 부분에 땀이 찬다. 등에도 후끈 거리며 땀이 난다. 추우면서 후끈하고 축축한 미묘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땀이 나면 보통 기분이 상쾌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기분이 아주 별로다. 힘들어도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 뛰다가 걸으면 땀이 식으며 더 축축하다.

활발하던 철새의 무리도 고요하게 밤의 적막을 덮고 혹독함을 맞이했다. 다시 돌아갈까 싶다가도 조깅을 하기 위해 귀찮음을 감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여기까지 나온 게 아까워서 계속 달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반환점에 가면 반드시 하나씩 사 먹는 리어카 오뎅이있다. 오래되고 지저분하고 짭조름한 오뎅이 정말 오뎅 같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왜 그런지 오뎅은 세련되고 깨끗한 곳보다는 약간 지저분한, 파리가 윙윙 비행하는 곳의 오뎅이 맛있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고 더러워 보이고 닦고 닦은 흔적이 기름 떼처럼 보이고 먹고 나면 세균 때문에 여권 없이도 홍콩에 갈 수 있을 정도의 리어카식 포장마차의 오뎅이 좋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매일 오뎅을 한 4년 동안 먹었다.

그 사이에 좋아하는 오뎅이, 오뎅 집이 추려졌다. 대놓고 매운 양념이 들어간 시뻘건 국물의 오뎅은 피하게 된다. 또 꽃게를 넣어서 국물을 우려낸 곳도 피하게 된다. 꽃게를 넣으면 꽃게의 맛이 모든 오뎅 국물의 맛을 다 잡아 먹는다. 무의 시원한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뎅과 무, 대파 같은 것들로만 국물을 우려낸, 그리고 가끔 매운 고추가 들어가서 국물에 약간의 매콤함이 깃든 국물의 오뎅을 선호하게 되었다.

매일 가는 오뎅 집에 가서 오뎅을 두 개씩 사 먹다 보면 나중에는 제일 맛있는 ‘무’는 그저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주인 할머니가 무는 그냥 먹으라고 한다. 오뎅 국물에 몸을 푹 담가서 푹 데쳐진 무의 맛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오뎅을 먹기 위해 이렇게 혹독한 추위에도 일단은 끝까지 달린다.

반환점에 가면 부연 연기를 피워 올리며 맛있는 오뎅이 기다리고 있다. 오뎅을 한 입 먹고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김을 불면 입김이 영화 속 그래픽처럼 이만큼 나온다. 아아 겨울의 맛이군. 하는 기분이 든다. 오뎅을 파는 곳에도 생맥주를 팔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오뎅 한두 개에 맥주 한 잔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으로 여고생 두 명이 롱 패팅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차가운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지나간다.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여고생들은 시대가 변해도 역시 멋있었다.

오뎅을 먹기 위해서는 어떻든 거기까지 가야 한다. 다른 곳에도 오뎅을 팔지만 입맛이 이 집의 오뎅에 맞춰졌다. 푹 삶기지도, 설익지도 않은 오뎅이 좋다. 무엇보다 오뎅 국물이 내가 원하는 맛이다. 그러니까 오뎅을 먹고 싶어서라도 거기까지 매일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혹독한 추위에도 일단 나왔다면 달릴 수 있다.

차가운 겨울은 모든 풍경을 변하게 만든다. 그 풍경 속에 있는 인간의 마음도, 그리고 인간의 모습도 변화시킨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차가운 풍경도 기억의 필터를 대고 보면 꽤 아늑하고 희미하고 뿌옇고 흐뭇하다. 또 돌아보면 후회의 순간들이 지나간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후회할 수 없을 정도로 후회하여 내 죄가 물에 불은 신문지처럼 될 때까지 후회하면서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기도 한다.

그랬던 오뎅 집이 그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주인 할머니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더니 그대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후보였던 오뎅 집도 그만두고 난 후 지금까지는 오뎅을 사 먹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먹은 오뎅만 해도 엄청나다. 한동안 인별그램에 매일매일 조깅 후 먹은 오뎅을 올리기도 했다. 겨울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개인적으로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오뎅을 먹고 국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입김을 후 불면 화악 나오는 게 냉철하고 차가운 겨울의 분위기다.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7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