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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1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73

10장 4일째

273.


 미국 군부의 연구목적을 노라와 마이어스는 알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고 자정을 넘어가면서 그들은 블라디미르의 침대 시트를 갈아주려고 연구실로 돌아갔다. 텍사스 주 북쪽 하늘에서 자줏빛의 큰 마른번개가 한 차례 떨어졌고 노라와 마이어스가 블라디미르가 누워있는 연구실로 들어가려고 유리문을 돌렸다. 하지만 모아이의 입처럼 굳건하게 닫혀서 열리지 않았다. 노라는 되돌아서 열쇠를 가지러 갔다. 문은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도어 시스템이었고 이 비밀번호는 매일 바뀌었으며 들어갈 수 있는 연구진에게만 알려진 번호였다.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빨간불이 들어왔다. 연구를 하는 벙커 안에서 빨간색은 좋지 못했다. 노라가 고요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밤에 열쇠를 가지러 간 사이 마이어스는 유리 벽안의 블라디미르 상병이 누워있는 침상에서 몸이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몸을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그저 침대가 달그락 거릴 뿐이었다. 침대는 간질환자가 증상을 보이는 것처럼 덜덜 거리며 움직였다.


 마이어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유리문에 붙어 있는 것밖에 없었다. 블라디미르의 몸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이 마이어스의 육안으로 들어왔다. 블라디미르의 몸에서 물이 조금씩 빠져나오면서 침대가 흔들거렸고 블라디미르의 몸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대로 뒀다간 블라디미르의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와 그는 가죽만 남은 인간으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마이어스는 노라를 힘껏 불렀다. 블라디미르의 몸에서 많은 양의 물이 빠져나와 연구실의 침대 밑바닥에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마이어스는 노라를 더 큰소리로 불렀다. 마이어스는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고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누르며 문의 손잡이를 세차게 돌렸다. 마이어스가 문을 열려고 문에 붙어서 노력을 하는 동안 블라디미르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어가고 있었다. 마이어스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구둣발로 차기도 했다. 마이어스는 블라디미르의 호흡기관을 연구하고 싶었다. 어떠한 경로로 인해서 블라디미르의 허파에는 허파꽈리 공간에 있어야 할 폐포 모세혈관 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블라디미르의 뇌사상태가 유지되는 동안 호흡기관의 장기가 이상하더라도 그는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이어스는 블라디미르를 통해서 호흡기관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인간의 수많은 비밀 중에 하나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블라디미르의 몸은 계속 줄어들었다. 뱀의 가죽을 벗고 내용물을 빠져나가 쪼그라들듯 부풀어있던 청년의 몸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막아야 했다. 물은 분명 신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거나, 피부가 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신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물이 피부를 통해서 나오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피부의 피막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면 피부의 손상이 심각하게 된다. 일반인 같지 않은 블라디미르의 피부가 변이를 일으킨다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블라디미르의 증상을 막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에 마이어스는 사로잡혔다. 문을 있는 힘껏 찼다. 비밀번호를 계속 눌렀다. 도어의 잠금장치는 4번의 오류가 나면 컴퓨터가 비밀번호 시스템 자체를 스스로 파기해 버린다. 도어의 스크린에는 어떤 숫자도 나타나지 않았고 문은 더욱 강력하게 입을 다물었다. 마이어스가 노라를 부르며 유리문에 붙어서 블라디미르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을 때 블라디미르 상병이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몸은 근육이 하나도 없는 등 푸른 생선처럼 매끈한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다. 물로 만들어진 억지스러운 피부처럼 보였다. 마이어스는 놀란 눈으로 블라디미르를 바라보면서 입으로 크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블라디미르 나야, 그동안 자네를 돌봐온 사람이라구!”


 블라디미르는 털이 하나도 없는 몸으로 천천히 자신의 몸에 붙은 호스를 잡아당겼다. 뇌사상태의 블라디미르는 침대 위에 누워 있어서 늘 눈은 감고 있었다. 마이어스는 아직 블라디미르의 눈동자를 보지 못했다. 침대 위에 상체를 일으켜 호스를 떼고 있는 블라디미르는 눈은 뜨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눈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흰자위도 검은 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안구가 하나의 회백색으로 쪄낸 오래된 두부의 색 같았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서 더욱 공포스럽게 보였다. 마이어스는 그 모습에 많이 놀라서 멍하게 블라디미르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노라가 열쇠를 들고 왔고 열쇠를 꽂아서 문을 오픈하려면 두 사람이 한꺼번에 두 개의 키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 특수훈련을 받은 경비원과 노라와 마이어스는 합을 맞춘 다음 문을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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