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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1. 2020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진 에세이


20년 전에 나온 영화 '식스센스'를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사랑을 말하는 영화였다. 나이트 샤말란(를 좋아해서 그의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식 사랑에 관한 영화. 콜 세어의 여섯 번째 감각은 어쩌면 사랑을 못 잊고 그대로 죽어버린 자들의 사랑을 찾아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아니 바로 그 감각이다. 특히 차 안에서 엄마인 토니 콜렛과의 대화에서 죽은 할머니는 엄마를 딸로 언제나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고받을 때 정말 감동적이었다.


사랑이란 아주 묘해서 사랑은 늘 '한다'로 현재 진행형으로 말하며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랑했었다'이다. 사랑의 정의도 모호하며 사랑의 방식도 가지각색이며 사랑의 표현도 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대번에 안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 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이 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연애시대 은호의 말을 들으며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사강의 '마음의 파수꾼'에서 도로시를 향한 루이스의 사랑도 사랑인 것이고, 삶의 목적이 데이지였던 게츠비는 마지막 데이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게츠비 같은 사랑도 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쓰고 몇 번이나 읽은 뒤 편지를 찢어버리는 무진기행의 ‘나’는 무엇을 사랑한 것일까. 사랑에 정의를 내리는 시험을 친다면 나는 아마도 빵점을 받을 것 같다.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랑의 정의는 영화 ‘행복한 사전'에서 내린 사랑이다.


내 편은 딱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내편이 부모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혈연 그 이외의 것으로 이어진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 가족도 나와 무관한, 모르는 이와 만나 사랑을 해서 이루는 곳이니까. 나와는 무관한 곳에서 탯줄을 끊고 태어나 완전히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나와는 전혀 맞는 점이 없지만 가끔 “나도 그런데”가 입 밖으로 나와 거리가 가까워지는 사람 한 명이 내편이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모르는 이와 만나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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