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군고구마를 여름에도 길거리에서 판다면 더위에 허덕이더라도 달려가서 사 먹고 싶다. 여름의 땡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군고구마를 먹고 있어도 아 참 맛있군, 하게 될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은. 누구나 군고구마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터, 나에게도 군고구마에 대한 추억이 생생하다.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제대 후 토건회사를 좀 다니다가 https://brunch.co.kr/@drillmasteer/888
음악을 듣지 못하게 해서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오는 겨울 동안 군고구마를 팔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팔아치웠다'가 맞는 말처럼 엄청나게 팔렸다. 군고구마를 먹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 기리도 했다. 아마도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동네는 국내 최고의 제조업 회사가 있고 호황기였으며 군고구마를 파는 자리 근처에는 온통 학원들이었다. 5분만 걸어가면 아파트 단지가 죽 있었고 학원들 중에서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미술학원 같은 것들이 잔뜩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줄까지 서서 군고구마를 가지고 간다는 게 요즘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오전에는 대학생 주제에 자동차(라고 해봤자 중고자동차로 오래된, 그래서 어느 날 군고구마를 싣고 오다가 해안도로에서 차가 퍼져서 밀어서 안전한 곳까지 옮긴 적도 있었다)가 있는 친구 놈을 달래서 농산물 시장에 가서 고구마를 골랐다. 몇 번 가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된 고구마 아저씨에게서 늘 좋은 고구마를 2박스씩 매일 구입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고구마를 하루 저녁에 다 팔아 치우나?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우리도 잘 모르겠어요. 자정이 되기 전에 다 팔려요”라고 했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군고구마를 파는 장소가 동네 서점 문 앞이었다. 다행히 군대 후임의 집이라 후임의 아버지께서 그렇게 장사를 하게끔 해주었다. 그리고 책도 마음껏 보라고 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하지만 장갑을 껴도 손이 꺼멓게 탄 끼가 묻었고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고구마를 들고 가는 바람에 불을 쬐며 책을 읽는다는 건 어림없는 소리였다.
제대를 하기 전 두 번의 겨울을 군대에서 맞이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카드 병력으로 차출되어서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만드는 것으로 모든 훈련과 내무반에서 열외가 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아주 졸병 시절 부대 마크를 디자인했는데 그것이 채택이 되면서 부대 티셔츠에 내가 디자인한 마크가 떡 하니 프린트가 되면서 겨울에 크리스마스 카드 병력이 되었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국방부도 아니고 내무부도 아닌 법무부 소속이었다.
카드 병력은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모든 훈련과 구타에서 열외라는 것이다. 카드를 만드는 실내에 들어가는 순간 부대의 살벌한 기운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 안에서는 계급도 거의 없고 늘 웃고 떠들고 과자를 먹고 음악을 들으며 카드만 만들면 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일어나도 그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단점이라면 똑같은 카드를 몇 백장씩 만들어야 해서 웃고 떠들던 시간은 어느새 고된 중압감에 사라지고 등을 구부리고 잠도 잊은 채 카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드 만드는 실내를 빠져나가면 부러워하거나 시샘의 눈초리로 보는 동기들.
카드는 디자인만 간단하고 예쁘게 만들면 여러 장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나 또 쉬운 일도 아니었다. 샘플을 만들어서 어딘가에 걸어 놓으면 직원들이 몇 십장씩 구매를 한다. 그러다 보면 똑같이 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고참들이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샘플보다 못하면 구입하는 사람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텐데도 힘들다고 대충대충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참이니까 참견할 수는 없다. 요령이라는 게 있는데 무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하나의 카드에 매달리니까 샘플과는 다른, 엉망의 카드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후에 내가 고참이 되었을 때는 샘플을 잘 만들어 놓은 다음 하는 작업을 분할했다. 내가 도안을 해서 카드의 중간을 오려 놓으면 옆에서 오린 부분만 빼고 셀로판지를 댄 다음 스프레이를 뿌리면 나머지 부분이 하얀 눈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옆에서 그 카드를 이어받아서 눈 사람을 도형에 맞게 넣고 그 옆에서 마지막으로 금색 사인펜으로 크리스마스 글자를 넣는다. 그러면 간단하면서도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7월에 제대해서 4개월 정도 토건회사에 다니고 10월 중하순부터 고구마를 팔아대기 시작해서 2월 초까지 했다. 겨울에 카드를 만들었던 방법으로 해서 군고구마를 파는 곳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서 군고구마 가스통 앞에 죽 늘어놓고 7천 원어치 이상 구매하는 손님들에게는 카드를 줬다. 11월 1일부터 캐럴을 틀어댔다. 빙 크로스비, 머라이어 캐리, 터보, 닥치는 대로 틀었다. 그렇지만 싫어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7천 원 이상 구입해도 만든 카드는 뭐 대부분 학원의 선생님들, 예쁜 여자 선생님들에게 줬지만 다른 손님이 와서 나도 카드를 달라고 하면서 카드를 계속 만들었었다. 그래서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카드를 만들고 저녁부터 자정까지는 고구마를 팔았다. 고구마를 파는 곳 근처에 초등학생 저학년들이 다니는 미술학원이나 피아노 학원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아니면 아직 초등학생이 아닌 것 같은 아이가 와서 군고구마를 하나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줬다. 나는 돈을 달라고 손을 쓱 내밀었는데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아주 맛있게 먹더니 그냥 가버렸다. 눈앞에서 버젓이 당했다.
군고구마 장사를 할 때 도와주러 온 친구들이 많았다. 후배들부터 친구들이 진을 쳤다. 도와준다고 왔지만 근처에서 맥주와 탕수육을 주문해서 앉아서 먹었다. 학원가에서 여선생님들이 자주 오니까 이 새끼들이 매일 그렇게 싸들고 찾아왔다. 눈앞에서 아이에게 당한 그다음 날 아이의 엄마가 와서 미안하다며 군고구마를 만원 어치 달라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구입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한 두 개만 사 가지고 가셔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의 엄마는 만원 어치를 달라고 했다. 때마침 구워 놓은 게 다 팔려서 다 구워지면 집으로 배달을 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배달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우리의 다리는 튼튼해졌다. 엘리베이터가 좀 늦게 내려온다 싶으면 고구마가 식을까 봐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고구마 삥땅을 쳐서 고구마에 맛을 들린 그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말했는지 그다음 날부터 아이는 친구의 손을 잡고 와서 군고구마를 나란히 앉아서 친구와 먹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난처한 얼굴을 한 아이의 엄마가 또 오고. 아무튼 재미 었었다. 오후 5시부터 장사를 했는데 5시가 되면 동네 아이들이 그렇게 몰려들었다. 그러면 차가 다니니까 안전한 곳, 고구마 통 옆의 벤치에 전부 앉게 한 다음 익어가는 대로 아이의 손에 군고구마를 쥐어 주었다. 후후 불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병아리들 같았다. 아이들은 뭐 계산이고 뭐고 군고구마의 맛에 빠져서 냠냠 거리며 종알종알거렸고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은지 뭔가 한 마디 하면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 아이들이니까. 고구마를 먹고 있어도 똥 얘기를 하면 아이들은 까르르르 웃었다. 그것 참.
처음부터 군고구마 가스통이 2 통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통만 하다가 점점 사람들이 많아져서 2 통이 되었다. 더불어 배달도 많아지고 카드도 열심히 만들었다. 카드는 손님들에게 꽤 먹혀 들어서 재방문이 늘었고 카드에 대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미술학원의 선생님들이었다. 4달 정도 고구마를 팔았다. 5시부터 보통 자정까지 팔았는데 고구마는 늘 다 팔렸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군고구마 장사가 생겨났다. 몇 시간 장사를 하지 않았는데 보통 하루에 25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 매출이 나왔다. 대단했다.
그리고 4달 후에 그 돈으로 친구 두 명과 함께 호기롭게 경비를 내가 다 대고 전국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냥 계획도 없이 3명이서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좋은 곳이면 그대로 눌러앉아 버리고 다음 날 일어나서 또 올라갔다. 강릉에 가서 밤에 군고구마를 사 먹었는데 며칠 먹지 못했다고 고새 군고구마의 맛에 홀라당 넘어가서 우리는 추운 겨울의 길거리에 앉아서 군고구마에 소주를 홀짝 거리며 시시덕거리며 여행을 즐겼다. '군고구마 주'라고 해서 소주에 고구마를 넣어 으깨서 마시면 추운 날 꽤 맛있었다. 이제 또 군고구마의 계절이다. 요즘은 군고구마가 대형 마트 안이나 중형 마트 문 앞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서 운치는 떨어지지만 군고구마의 맛은 비슷한 것 같다.
군고구마는 기묘해서 먹을 때마다 맛있어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