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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84

10장 4일째

284.


 마동은 그녀를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뜨거운 태양이 하늘의 저쪽에 솟아올라 아스콘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버리는 열기를 뿜어내고 있음에도 마동은 덥다고 느끼지 못했다. 선글라스를 썼다. 그리고 거리를 나섰다. 평일의 이 시간에 나서는 것은 언제나 낯설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착지가 불명확한 상태에 한낮에 돌아다니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학생들이 수업해야 할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는 것처럼 평일의 이 시간, 거리는 마동에게 낯선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평일임에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며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겨울보다 사람들이 이 시간에 더 많아 보였다. 사람들은 더위에 인상을 쓰면서도 잘도 걸어 다니고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평일의 낮 시간에 건물 속에서 꽁꽁 틀어박혀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이나 맞으며 일만 한다면 낮 시간에 장사를 하는 곳은 굶을 것이고 전력은 과포화를 넘어서서 공급과 수급이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 일하는 자들은 국민의 대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것에 대해서 논의한다고 세금을 야금야금 먹어가기만 할 것이다.


 세계는 마동이 모르는 사이에도 불공평하거나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로 누가 연락이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낚시를 할 때 물에 담긴 찌는 어느 정도 높이에 맞추는지 가늠해 보듯 마동은 생각을 했다. 낚시? 마동은 소피가 오면 소피를 졸라 낚시하는 곳으로 데리고 갈까 하고 생각하느라 걷던 길을 잠시 멈춰 섰다. 물론 소피는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그러지 못하겠지. 언젠가 소피가 시간이 많이 난다면 낚시를 하러 같이 가야겠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리고 곧 허황된 생각이라고 입 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낚시는 천천히 고요하게 시간을 죽여 가는 행위다. 물론 바다에서 하는 다랑어 낚시는 지칠 줄 모르는 5세 미만 사내아이의 에너지처럼 역동적이고 시간이 훌쩍 가버리지만 마동이 말하는 건 그런 낚시가 아니다. 낚시는 오로지 낚시만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낚시를 하러 가서 티브이 광고에서처럼 책을 읽거나 누워서 주위의 정취를 즐기며 음악을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면 낚시가 되지 않는다. 낚시를 하게 되면 조금은 전투적인 마음가짐을 지니게 된다. 옆 사람은 낚싯바늘에 미끼를 꽂아서 강물에 던지자마자 고기를 낚아 올리는데 나만 그러지 못한다면 묘하게 분한 감정이 들면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낚시를 하려면 미끼를 지속적으로 끼워줘야 한다. 지렁이를 시종일관 바늘에 꽂았다가 뺏다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손에 비늘과 고기의 비린내 그리고 지렁이의 살점과 피가 금세 묻어서 책을 읽거나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낚시를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오직 찌를 쳐다보며 시간을 죽여 가는 것이다.


 물고기와 나와 흘러가는 시간.


 삼원색이 한데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찌를 소피와 함께 나란히 앉아 노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망성은 한국에 백야현상이 일어날 만큼 가망성이 없다.


 도로의 아스콘은 태양의 이글거림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복사열을 고스란히 대기로 올려 보냈다. 복사열로 인해 세상에서 제일 떫은 감을 씹는 표정을 한 사람들이 그늘이 있는 버스 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마동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누가누가 인상을 더 쓰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간에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든 미묘한 곳에 마동은 더위도 타지 않은 채 덩그마니 서 있었다. 그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9017번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를 하는 모습을 봤다. 버스의 배가 갈라지고 우르르 그곳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앞문으로 사람들이 미간을 좁히며 올라탔다. 마동은 바지 주머니에 지폐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9017번의 버스에 올라탔다. 바지 주머니에는 의사가 넣어놨는지 만 원짜리가 3장이 들어 있었다. 바지의 촉감도 짧은 털을 가진 동물의 등처럼 아주 부드러웠다. 바지의 허리춤을 뒤집어 보니 페라가모였다. 버스를 타고 만 원짜리를 건네주니 잠자리의 눈 같은 선글라스를 쓴 버스기사가 마동을 잠시 훑어보더니 레버를 당겨 동전으로만 우르르 거슬러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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