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Nov 13. 2020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을 번역하면서 

뉴요커지에 실린 표지 같은 삽화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하루키 신작 단편집 '1인칭 단수'에 실린 단편으로 오래전 '도쿄 기담집'이라는 단편집에 실린 '시나가와 원숭이'라는 단편의 후속 편 격이다. 아직 한국에 나오지 않은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을 번역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다. 1편 격인 도쿄 기담집에 실린 '시나가와 원숭이'를 읽어보면 원숭이는 인간의 이름을 훔치는 것으로 시나가와에서 추방을 당한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여성의 이름을 훔치는 것으로 주인공 여성 '안도 미즈키'는 가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것이 사소하지만 조금씩 생활의 불균형을 만든다. 결국 탐정에 의해 잡힌 시나가와 원숭이는 시나가와에서 추방을 당하는 것으로 '시나가와 원숭이'는 끝이 난다. 


그리고 15년 동안 원숭이는 여러 곳을 떠돌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군마현 온천마을의 작고 낡은 여관에서 일을 하며 지내다가 글 쓰는 직업을 가진 하루키(주인공을 하루키라고 하자)를 만나고 그의 등을 밀어주고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것이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의 도입이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기품 좋은 교수 부부에게 어릴 때부터 길러져서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이유, 인간의 이름을 훔치는 것으로 추방을 당하여 원숭이 파크로 유명한 타카사키야마 남쪽 지역에 눌러앉게 되었다.

하지만 원숭이들은 시나가와 원숭이를 배척했다. 말하는 거 완전 이상해, 공통점이 없어, 그러면서 다른 원숭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원숭인데 다른 원숭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결국 거기서 도망쳐 나와 길거리를 배회하는 원숭이가 되었다.

"아무도 저를 보호해주지 않아서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슬쩍 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대화를 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숭이와도 사람과도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고립은 마치 제 가슴에 터트릴 것 같이 아프게 했습니다. 타카사키야마는 굉장한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제가 마주치는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고 원숭이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음으로, 여기에서도 거기에서도 상처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라는 대사가 있다. 대중 속에서의 고립은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을 번역하면서 이 부분은 요즘에 너무 깊게 와 닿았다. 우리는 도심지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여기에도 저기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고립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엉엉 울고 싶지만 소리 내 울 수도 없다. 

우리는 친밀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조직에서 그렇게 대화를 할 수 없다. 상하관계에 맞는 대화가 있고 거기에 속하지 못하면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그때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만약 상처를 받았다면 제대로 받아야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받은 상처는 그대로 곯을 대로 곪아 흉터가 되어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은데 대화를 할 수 없으면 고립된다. 그리고 고립은 가슴을 터트릴 것처럼 아프게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고립의 끝에 가면 모든 것이 편안한 Zilch상태로 가고 만다. 우리 주위에 고립되어 있는 시나가와 원숭이가 많다. 상처를 받았다면 나 상처 받았다고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을 번역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 상처가 형태의 것이든, 무형태의 것이든.



김가으니가 번역을 도와주었다


2006년 도쿄 기담집
시나가와 원숭이에게 이름을 빼앗긴 안도 미즈키는 어떻게 될까. 한 번 읽어 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