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Nov 19. 2020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하루키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속에 나오는 주인공 하지메는 하루키의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찌질하고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무례하고 철없고 자기 주관적인 주인공이다.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학적인 아름다움으로 포장을 해도 하지메는 하루키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가장 찌질한 인간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찌질한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다. 일상이지만 전혀 일상 같지 않고 도처에 잘 볼 수 없는 일탈을 긁어모아 만든 캐릭터, 어떤 사람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말들,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터부 같은 마음을 구어를 통해서 배설해버리는 찌질한 인간. 

무척 자신을 포장하지만 실은 허울뿐이고 그저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변명이나 늘어놓는 그런 사람이 하지메다. 어릴 때 만났던 첫사랑을 잊지 못해 몇십 년을 속에 꿍쳐놓고 있다가 결국 만나서 아내를 만나 딸을 두고 살아온 과정은 잊은 채, 아니 과정은 중요하지 않으니, 나의 과정 속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의 두 딸 모두 버릴 수 있으니 나는 너에게 가야겠다, 라는 식의 인간이 하지메다.

그리고 눈치채고 있는 아내에게 이런저런 허울 좋은 꾸며진 말들로, 물론 자신은 진실되게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오래 전의 한국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제목이나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내의 동생과 사랑을 하게 된 주인공이 어딘가 별장에서 오다가 핸들을 틀어 두 사람은 결국 죽고 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소설 속에서 시마모토는 하지메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에서 핸들을 돌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힌다. 그리고 그렇게 했더라도 하지메는 받아들이겠노라는 뉘앙스로 말을 한다. 

이 소설은 다른 장편 소설에 비해서 하루키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적은 것이라 한다. 하루키는 어째서 이런 소설을 적었을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노르웨이 숲’ 이후에 자신은 이런 류의 소설과 맞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류, 그러니까 리얼리티의 소설은 적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온 소설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일큐팔사‘나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나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 이후 마지막 장편 소설까지 대체로 초현실 소설이었다. 

하루키가 뭔 정신으로 이런 찌질하고 구질구질하고 보잘것없는 하지메의 이야기를 적었을까. 그것도 긴 장편을 집필하는 도중에 적은 이 이야기는 하루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도 하루키도 인간이라 자식 없이 긴 시간 동안 아내와 단둘이 생활하는 것에 약간은 염증을 느껴서 그랬을까. 그런 자신이 싫어서 소설을 빌려 자신을 꾸짖는 이야기를 하고 배설하듯 뱉어버린 것일까. 

개인적으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하루키에게 요물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잘 포장된 홍상수의 영화다. 하지만 이런 찌질한 주인공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빠져드는 건 나 역시 하지메와 다를 바 없는 찌질하고 못난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