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2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2

11장 4일째 저녁

312.


 는개가 중학교 2학년 때 나를 만났다면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공백을 앞에 앉아있는 그녀가 알고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오래전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이제 갓 만들어진 달력처럼 너무 선명해서 잊히지 않아요. 전 엄마가 왜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예요. 엄마는 재혼이었어요. 식은 올리지 않았죠. 어느 날 새아빠가 집으로 들어왔어요.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유린된 중학생의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어요.”     



 박는개.


 는개라는 이름은 그녀의 외할머니가 지어주었다. 엄마의 엄마가.


 는개는 태어날 때부터 늘어진 안개 같은 모습이었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비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는 이름처럼 는개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연하고 깨질 것 같았다. 약하게 태어난 는개는 외할머니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되찾았고 는개가 3살이 되고나서부터는 할머니가 매일 데리고 다니면서 많이 걷게 했다. 는개는 아빠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아빠의 부재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아이가 아빠가 사준 인형이라고 자랑을 할 때면 는개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위축되고 불협화음의 그림자를 만들어낸 는개의 모습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는개 옆으로 왔다. 그리고 는개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이제 집으로 가자꾸나. 하며 손을 잡고 놀이터를 떠났다.


 는개가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집으로 남자를 데리고 와서 이제부터 아빠야,라고 말했고 그 남자는 는개를 무릎에 앉히고 용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키가 작고 손은 힘든 일은 하지 않는지 손바닥이 무른 찰흙처럼 부드러웠다. 웃으면 얼굴에 주름이 많이 졌지만 웃지 않으면 얼굴에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눈은 옆으로 찢어져 있어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때가 가끔 있었다. 수염을 늘 깨끗하게 밀어서 턱이 반들반들했고(는개가 어렸을 때 자주 만졌다) 머리는 짧았으며 이마가 좁고 머리카락은 직모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진하게 칠한 것처럼 숱이 많았다. 엄마에게 가끔 누나라고 하는 걸 보니 엄마보다 나이가 어렸다.


 새아빠는 는개가 학교에서 하교를 하고 집에 오면 늘 집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아빠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것에 비해서 는개의 새아빠는 언제나 집에 있었다. 새아빠가 집으로 오면서 같이 살던 외할머니가 따로 집을 얻어 나갔다. 그날 는개는 많이 울었다. 막상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누군가가 없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싫었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한 의식의 통로를 마구 뒤흔들었다. 외할머니가 어째서 집을 나가서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는개가 몇 년 후에 훌쩍 커버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일터에서 마주치는 남자와 잠을 자는 사이로 발전했고 남자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가 지고 있는 빚을 청산해 주었다. 그 대가로 재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족쇄라는 것을 엄마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재혼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었지만 자신의 몸을 허락해주기 전까지 이 남자와의 줄다리기에서 자신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부끄럽지만 인정했다. 이 남자는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빚을 청산해주었다. 남자는 혼인신고 같은 것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생략했다. 엄마는 그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면에 깔린 불길하고 무서운 뉴스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